국문요약 7
제1장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 17
제2장 자초한 명정상태 처벌의 연혁 21
제1절 고대그리스, 고대로마 21
1. 고대그리스 21
2. 고대로마 24
제2절 중세유럽 25
1. 중세교회법 25
2. 스콜라학파 27
3. 중세 이탈리아법학 31
제3절 독일보통법시대와 개별국가의 형법전 32
1. 보통법시대 32
2. Pufendorf의 견해 34
3. 개별국법(Partikularrecht) 37
제4절 1871년 독일제국형법전과 당시의 학설, 판례 48
1. 1871년 독일제국형법전의 입법과정과 규정 48
2. 당시의 학설과 판례 49
제5절 소 결 51
제3장 우리나라 책임능력규정의 연혁 53
제1절 조선시대의 책임능력 53
1. 연령에 따른 책임능력의 구분 53
2. 건강상태에 따른 책임능력의 구분 54
3. 조선시대 명정, 음주규정의 부재 54
4. 1905년 형법대전의 규정 55
제2절 형법 제정 56
1. 정부초안(1951년) 56
2. 국회심의(1953년) 61
제3절 소 결 61
제4장 외국의 입법례 63
제1절 개 관 63
제2절 대륙법 국가 63
1. 독 일 63
2. 오스트리아 71
3. 스위스 73
4. 프랑스 77
5. 이탈리아 77
6. 스페인 78
7. 폴란드 78
8. 일 본 79
제3절 영미법 국가 81
1. 영 국 81
2. 미 국 83
3. 캐나다 88
제4절 소 결 89
제5장 자초명정 또는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의 형사책임 91
제1절 문제상황 91
제2절 학설의 검토 93
1. 구성요건모델 93
2. 예외모델(책임모델) 94
3. 심리적 동가치책임설 96
4. 예외모델 및 심리적 동가치책임설은 책임주의에 반하는가? 98
제3절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의 유형과 요건 99
1. 종래 유형분류방법과 문제점 99
2. 고의의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의 요건과 효과 100
3. 과실의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 102
4. 유형론과 요건, 효과의 정리 111
제4절 최근의 논의에 대한 검토 112
제6장 자초한 명정상태하의 범죄에 관한 개선방안 119
제1절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의 개정입법론 119
제2절 한정책임능력의 경우 122
1. 문제의 소재 122
2. 한정책임능력을 이용한 경우의 공통점과 차이점 124
3. 한정책임능력을 이용한 경우 고의책임 귀속요건의 완화 125
4. 한정책임능력 규정의 개정방안 128
제3절 자초명정죄(완전명정죄)의 신설 130
제4절 책임능력 판단의 소송법적 문제 135
1. 문제의 소재 135
2. 사실심리절차와 양형심리절차 분리의 필요성 및 방안 136
3. 공소장기재사항의 변경 139
4. 양형심리의 충실화와 양형조사제도 140
5. 기 타 142
제5절 최근 책임능력관련 법률개정안의 검토 143
1. 제출된 법률안의 주요내용 143
2. 법률안의 검토 146
참고문헌 149
Abstract 169
1. 들어가는 글
2009년 말 보도된 “조두순 사건” 또는 “나영이(가명) 사건”은 국민에게 많은 충격을 주었다. 1심법원은 피고인을 징역 12년에 처하고, 피고인에 대한 열람정보를 5년간 열람에 제공하며, 7년 동안 위치추적 전자장치의 부착을 명하였다. 그리고 대법원에서 지난 9월 확정되어 현재 청송교도소에 수감중이다. 이 사건이 KBS시사프로그램에서 다루어진 후 언론과 시민단체, 시민들은 이러한 아동을 대상으로 한 흉악범에 대하여 12년의 형은 너무 가볍고, 특히 무기징역을 선택하고도 주취감경을 한 점에 대하여 비난이 거셌다. 이외에도 검사가 특별법이 아닌 일반형법을 적용한 점, 낮은 형량에서 불구하고 항소를 포기한 점, 수사절차에서 피해아동에게 5번이나 반복진술하게 한 점 등 형사절차와 관련하여서도 많은 문제점과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 사건의 여파로 유기징역의 상한을 폐지하거나 상향하는 법안, 아동성범죄자에 대하여 공소시효를 연장, 정지시키는 법안 등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이중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피고인이 음주상태였다고 하여 주취감경을 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하는 점이다. 일부에서는 성범죄에 있어서는 주취감경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으며, 이에 관한 다수의 형법 및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상태이다. 음주나 약물복용한 후 성폭력범죄를 행한 때에는 오히려 가중처벌하도록 하는 법안도 제출되어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여러 주제 중에서 특히 책임능력규정과 운영에 관한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집중하여 검토한다. 조두순 사건에서도 문제가 되었지만, 그 이전부터 책임능력규정과 그 운영에 관하여는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어 왔다.
형법상 스스로 심신장애상태를 야기하여 범죄를 범하는 경우는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actio libera in causa), “자초명정”(self-induced intoxication), 또는 “자의적 명정”(voluntary intoxication)이라는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다. 이 주제와 관련된 서양과 우리나라의 연혁과 입법례도 상세히 검토한다. 아울러 한정책임능력의 효과에 대한 재검토,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의 개선방안, 자초명정죄(완전명정죄)의 신설, 형사절차상의 개선방안 등에 대하여 해석론적, 입법론적 제안을 제시하며, 현재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다수의 법률개정안도 검토, 평가한다. 이를 통하여 책임능력과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 명정범죄에 대한 해석론적, 입법론적 문제점을 해결하고 관련 제도를 보다 합리화, 선진화하여 명정범죄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2. 연 혁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의 처벌에 관하여는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현실적이고도 대립이 심한 문제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특히 「니코마코스윤리학」에서 명정행위에 대하여 연구를 수행하였다. 명정자는 명정상태하의 범죄에 대한 불인식의 야기자(Urheber der Unkenntnis)라고 할 수 있다. 명정상태로 인하여 범죄를 인식하지 못한 경우에도 불인식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이 있으면 행위자는 처벌된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음주만취한 명정자에게는 이중의 비난(doppelter Vorwurf)이 제기된다. 왜냐하면 시동원리가 그 자신 속에 있기 때문이었다.
중세 교회법의 Augustinus는 성경에 나오는 Loth 사건과 관련하여, 명정상태에서 행한 행위, 즉 간음이 아니라 음주한 행위 자체에서 책임비난의 요소를 발견하였다. 이에 의하면 Loth는 무의식상태에서 행한 간음행위에 대하여는 책임을 지지는 않지만, 스스로 야기한 명정 자체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았다. 이와 달리 Rufinus는 Loth가 정상상태에서 간음을 행한 것은 아니지만, 명정상태에서 행한 근친상간으로부터 완전히 면책되어서는 안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비난이 비록 정상적인 상태에서의 근친상간에 대한 비난보다는 감경될 수 있다고 하여도 말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특히 “의도적 자의성”이라는 개념을 통하여 행위자가 면책사유를 만들기 위하여, 계획한 범죄를 실행하기 위하여, 또는 양심의 가책없이 범죄를 실행하기 위하여, 불인식을 의도적으로 야기한 경우에는 명정상태하의 범죄가 감경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의 견해를 정리하면, 명정상태에서 행한 범죄는 그 명정상태의 야기가 유책하지 않으면 완전히 면책되고, 유책하게 자의적으로 야기된 명정의 경우에 행위자는 감경된 책임을 지며, 의도적 자의성의 경우에는 감경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러한 사고를 통하여 이미 토마스 아퀴나스에서부터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다고 평가된다.
푸펜도르프는 귀속이론을 통하여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의 구조를 체계화하였다. 그는 그 자체로 자유로운 행위와 자체로는 자유롭지 않아도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를 구분하여 그 자체로도, 그 원인에 있어서도 어떤 사람의 힘(Macht)에 의하지 않는 것은 그 사람에게 귀속시킬 수 없다고 보았다.
18세기 형법제정에 있어서는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에 대한 처벌규정이 명문으로 규정되었다. 1751년의 바바리아형법전 제1부 제1장 제19조에는 이미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가 실정법상 규정되었으며, 1794년 프로이센의 프로이센일반란트법(ALR) 제20장 제2부 제22조에도 관련규정이 있었다. 그러나, 1851년 프로이센형법전의 제정과정에서 당시 입법부장관인 von Savigny는 완전명정에 있어서는 사전계획과 명정상태하의 범행 사이에 인과관련이 부정된다고 하여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의 처벌을 부정하였고, 이러한 견해를 반영하여 1851년 프로이센형법전에는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에 관한 규정이 포함되지 않았다. 당시의 판례는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를 처벌하지 않았다.
이러한 입법태도는 1871년 독일제국형법에도 이어졌으나, 판례와 학설은 변화하였다. 당시의 학설과 판례는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에 있어서 행위자는 귀속무능력상태에 빠진 자신의 신체를 의식 없는 기계, 범행의 수단, 또는 도구(Werkzeug)로 이용한다고 하여 그 처벌을 긍정하였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시대에는 명정이나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에 관한 명시적인 법규범이나 판례, 학설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정약용의 흠흠신서에 명정을 이유로 면책한 경우와 이에 대한 정약용의 비판적 언급을 발견할 수 있었다.
1953년 형법제정시 형법 제10조 제3항에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가 신설되었는데, 이 규정이 어떻게 신설되게 된 것인지, 문언은 어디에서 유래된 것인지에 관한 입법자료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제10조 제3항은 형법제정소위원회나 국회에서 아무런 토론 없이 채택된 것으로 되어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형법 제10조 제3항의 유래에 대하여 모호한 점이 많이 있으나, 당시 형법제정과정에 있어서 외국의 입법례를 적극적으로 검토, 수용하였고, 또 외국이 법령이나 학설도 상당히 소개되어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보아, 당시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를 실정법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스위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입법례를 수용한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다만, 제10조 제3항의 문언은 어떤 외국의 법규정과도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규정의 문언은 입법자가 주체적으로 창안한 것이라고 짐작된다.
3. 외국의 입법례
대륙법계에서는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 또는 완전명정죄 등의 주제로 논의되고 있다.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를 통상의 형으로 처벌하는 명시적 규정을 두고 있는 나라가 있고, 그렇지 않은 나라가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스위스, 이태리, 스페인, 폴란드는 명시적 규정을 두고 있으며,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일본은 규정이 없다. 하지만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에 대한 명시적 규정이 없는 나라도 양형사유로 고려하거나, 간접정범의 법리를 사용하여 처벌을 긍정하고 있다.
영국, 미국, 캐나다 등 영미법계국가에서는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라고 일컬어지는 법형상이 대략 “자의적 명정”이라는 문제로 논의되고 있다. 통상 영국, 미국, 캐나다는 자초한 명정상태하에서 범죄를 범하여도 이를 특별히 고려하지 않고 처벌하는 경우가 많다. 책임무능력에 대한 입증책임도 피고인이 부담한다.
4. 자초한 명정상태하의 범죄와 관련된 개선방안
1) 책임능력규정의 개정
현행 제10조 제3항의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에 관한 규정은 해석상 여러 가지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 특히 “위험의 발생을 예견”이라는 부분에서 위험의 발생이 너무 추상적일 뿐 아니라, “예견”이라고 하여 과실의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는 제외되는 것이 아닌지 논란이 있다. 다수설과 판례는 과실의 경우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위험발생의 예견”이라는 명시적 규정에 충실한다면 고의만을 의미한다는 견해나 고의 및 인식 있는 과실만을 의미한다는 견해가 오히려 타당하다.
그러므로 과실의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까지 포함하도록 명확하게 동조를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이유에서, 1991년의 형사법학회 개정시안은 “고의 또는 과실로 정신장애상태를 자초하여 행위한 자”로 규정하고, 1992년 법무부 개정안은 “스스로 정신장애의 상태를 일으켜 고의 또는 과실로 행위한 자”라는 개정안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종래의 개정안은 정반대의 문제점을 가진다. 정신장애상태를 고의나 과실로 야기한다는 점을 규정되어 있지만, 명정상태에서의 범행에 대하여 고의나 과실과 같은 심리적 요소를 전혀 규정하지 않아서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가 아니라 독일의 완전명정죄처럼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해석론은 명정상태하에서의 범죄의 법정형에 따라 행위자를 처벌하는 것이 열려있기 때문에 책임주의에 반한다는 점은 물론이거니와 명확해야 하는 형법규정이 이처럼 모호하게 규정된다면 개정안은 그 자체로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아울러 형법개정특위의 논의과정에서는, 심신장애상태를 “고의나 과실로” 야기한다고 규정하는 것은 그 자체로 구성요건적 행위가 아니므로 고의나 과실이라는 용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공유되었다.
이렇게 볼 때 현행규정의 틀을 유지하면서 고의의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와 과실의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를 포함하도록 일부 문구를 수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또한 한정책임능력과 관련하여 책임능력이 완전히 결여되지는 않더라도 감소된 경우, 책임주의에 따라 형을 감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현행형법 제10조 제2항은 조금의 심신미약만 있다고 하여도 형을 반드시 감경해야 하는 것처럼 해석될 수 있어 오히려 책임주의에 반할 수 있지 않나 생각된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하여는, 책임능력이 현저히 절반 정도 감소된 경우에는 형을 감경하도록 하거나, 또는 임의적 감경으로 개정하여 책임능력의 감소정도에 따라서 형을 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할 것이다. 현재의 필요적 감경규정을 임의적 감경규정으로 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렇게 볼 때, 형법 제10조는 다음과 같이 개정하는 법률안이 적절하다.
입법안
제10조(심신장애(心神障碍)) ① 심신장애(心神障碍)로 인하여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이 없거나 그 판단에 따른 행위를 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 심신장애로 인하여 제1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
③ 심신장애상태에서의 범행을 예견하였거나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스스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행위에는 전2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2) 자초명정죄 등의 신설
음주만취하여 이성과 자제력을 상실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자신을 위험한 흉기로 방치하는 범법행위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음주만취 자체에 대하여 사회적 경종을 울려야 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독일의 완전명정죄(Vollrausch)에 유사한 죄를 신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단 죄명은 독일식의 ‘완전명정죄’보다는 ‘자초명정죄’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법정형은 폭행죄(2년 이하 징역)와 동일하게, 손괴죄(3년 이하의 징역) 보다 경하게 규정하여 단순자초명정죄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에 처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자초명정죄를 폭행죄의 법정형과 동일하게 규정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음주만취한 경우에 폭행사건에 연루되는 경우가 많고 만취한 경우 쉽게 폭력적이 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기 위함이다.
자초명정죄 입법안
제262조의2(자초명정죄 등) ① 알코올, 마약 기타 약물을 사용하여 스스로 책임능력이 없는 명정상태를 야기하고 그러한 상태에서 죄를 범한 자는 그 죄에 대하여 책임무능력을 이유로 벌할 수 없는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제1항의 죄를 범하여 사람을 상해에 이르게 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사망에 이르게 한 때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③ 제1항 또는 제2항의 경우에 명정상태에서 범한 죄보다 중한 형으로 벌하지 아니한다.
④ 명정상태에서 범한 죄가 고소, 고발이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거나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때에는 그 죄의 예에 의한다.
3) 공판절차의 이분
일반인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참여재판에서 유무죄의 사실심리절차와 양형심리절차가 통합되어 발생하는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첫째,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적법절차의 원칙 등의 문제이다. 피고인의 유무죄가 결정되기도 전에 피고인의 관련된 전과, 전력, 성행 등이 공판정에서 배심원에게 제출되면 유죄의 편견을 가질 개연성은 대단히 높다. 이는 피고인이 공정하고 적법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 위협이 된다.
둘째, “감성재판”이 아닌가 하는 언론의 비판이다. 필자가 참관하기도 한 참여재판에서는 피고인의 누이가 갓난아기를 업고 증인으로 증언을 하면서 어려운 가정환경을 설명할 때 눈물을 흘리며 울기도 하였다. 보다 냉철해야 하는 유무죄판단에 감정이 개입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이다.
유무죄의 사실심리와 양형심리가 통합되어 있는 현재의 시스템으로 인하여 피고인의 전과 등이 유무죄판단에 편견이나 선입견으로 작용함으로써 공정한 재판을 해칠 수도 있고, 반대로 피고인의 어려운 가정환경 등이 배심원으로 하여금 중한 범죄의 인정을 망설이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은 모두 공정하고 정의로운 재판의 장애요소가 될 수 있다. 나아가 공판절차 자체도 오히려 사실심리와 양형심리가 통합되어 있으므로 해서 오히려 핵심증인에 대한 집중심리가 어렵고, 증인의 비중에 따르는 효율적인 심리가 되지 못하여 공판절차 자체가 지연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참여재판에서는 공판절차를 유무죄의 사실심리절차와 양형심리절차로 분리할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이다.
4) 책임무능력의 입증방법
조두순 사건 이후 심신미약에 의한 감경을 엄격하게 하기 위하여 정신장애를 인정하기 위하여는 반드시 정신과의사의 감정을 거치도록 하는 등의 방안도 논의될 수 있다. 그러나, 책임능력에 관한 규정은 음주로 인한 경우뿐 아니라 충동장애 등 여러 사정에 의하여 발생할 수 있으며, 정신장애에 대한 판단을 어렵게 하여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이 교도소에서 수형생활을 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신중하게 접근하여야 할 것이다.
다만, 음주로 인한 심신장애를 주장하는 경우 이를 피고인측이 입증하도록 하여 입증책임을 부담하도록 하는 방안은 미국연방과 많은 주, 그리고 캐나다 등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제도로서 고려할 수 있다고 본다. 현재에도 소송실무상 피고인측에서 피고인의 심신장애를 입증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경우 입증의 정도와 관련하여, 피고인측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심신장애를 입증하도록 요구할 수는 없고, 민사소송에서 요구되는 정도인 증거의 우월(Preponderance of evidence)로 족하다고 할 것이다. 또 입증방법도 엄격한 증거법칙이 적용되지 않고 전문법칙도 허용되는 자유로운 증명으로 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5) 제출된 법률안의 검토
조두순 사건이 보도되어 국민적 관심사가 된 2009년 9월 이후 국회에 다수의 관련 법률개정안에 제출되어 있다. 이중에는 책임능력에 관한 규정을 포함하는 경우도 있어서 법리적 관점에서 평가, 검토해보고자 한다.
제출된 법률안을 분석하여 보면 개별적인 입법형식은 차이가 있지만 그 주요내용은 다음의 <표>와 같이 분류될 수 있다.
<표 3> 개정 법률안의 구분
구 분
법률안
비 고
성폭력범죄에서 음주 등의 경우 가중처벌하는 안
성폭법 개정안(이주영)
성폭법 개정안(진수희)
1유형
성폭력범죄에서 책임무능력과 한정책임능력을 배제하는 안
형법 개정안(신낙균)
성폭법 개정안(신낙균)
2유형
성폭력범죄에서 한정책임능력을 배제하는 안
형법 개정안(박선영)
성폭법 개정안(안상수)
3유형
성폭력범죄에서 음주 등의 경우 한정책임능력을 배제하는 안
형법 개정안(박영선)
성폭법 개정안(박민식)
4유형
먼저 음주 및 그 밖의 약물로 인한 심신장애 상태에서 성폭력범죄를 범한 자에 대하여 형의 2분의 1까지 형을 가중하는 법안을 검토한다. <표>에서 볼 때 제1유형에 속하는 법안이다. 이 법안은 음주나 약물을 복용하고 성폭력범죄를 범했을 때에는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그 구체적 근거나 이유에 대하여는 명시하고 있지 않다. 두 가지 점에 대하여 의문이 가능하다. 왜 음주, 마약 등을 사용하고 범죄를 행했을 때 가중처벌해야 하는가, 둘째, 왜 음주, 마약 등을 사용하고 성폭력범죄를 범한 경우 가중처벌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고대그리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의적인 명정 후의 범죄에 대하여 이중의 비난이 가능하다고 말한 적이 있으나 근대시민사회 이후 형법의 법리로서는 가중처벌의 근거를 발견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책임주의의 관점에서 위헌의 소지가 있다. 또한 성폭력범죄를 특별히 취급하는 합리적 이유도 발견하기가 곤란하다. 이 법안은 인간의 존엄성, 평등권, 법치주의, 과잉금지원칙 등에 반하는 위헌의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점에서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선진외국의 입법례에서도 이러한 가중처벌의 규정은 유례가 없다.
다음으로, 성폭력범죄의 경우 책임무능력과 한정책임능력에 관한 형법 제10조 제1항, 제2항, 그리고 농아자에 대한 규정인 제11조의 적용을 배제하는 법안을 검토한다. 위의 표에서 유형 2와 유형 3에 해당하는 법안들이다. 이들 법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심신상실이나 심신미약의 이유를 전혀 묻지 않고 책임능력 규정을 배제한다는 점이다. 즉 ‘자초한 명정상태’ 또는 ‘자의적 심신장애’인지 여부를 불문하고 음주 등으로 인한 심신장애의 경우에는 무조건 책임능력규정의 적용을 배제하고 있다. 고대그리스, 중세를 거치면서 그리고 현대 외국의 입법례에서도 자의적 명정 여부를 불문하고 처벌하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 자의적 명정상태에 대하여 엄격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영미에서조차도 자의적 명정상태(voluntary intoxication)에 대하여만 형감경을 부정할 뿐, 비자의적 명정은 책임감경을 긍정한다. 예를 들어, 선천적인 정신장애나 발달장애와 같은 장애자에 대하여도 처벌한다는 것은 책임비난을 본질로 하는 형벌제도의 목적에 반할 뿐만 아니라 책임주의와도 부합하지 않는다. 또한 타인이 강제적으로 또는 기망에 의하여 약물을 복용하게 하여 그로 인하여 명정상태에서 죄를 범한 경우에도 행위자를 비난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점에서 제2유형과 제3유형의 법률안은 헌법과 형법상의 대원칙인 책임주의에 반할 뿐 아니라 정책적으로도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제4유형의 법률안은 음주, 마약복용과 같은 자의적 행위를 통하여 명정상태 또는 심신미약을 야기하여 성폭력범죄를 범한 때에는 심신미약감경을 배제하고 있다. 미국 등 외국에서도 이러한 입법을 갖고 있고, 책임주의의 관점에서도 가능한 법률안이다. 다만, 미국 등 외국은 성폭력범죄를 불문하고 모든 범죄에 대하여 이러한 규정을 갖고 있으나, 이 법률안에 의하면 왜 유독 성폭력범죄에 대하여만 이러한 예외규정이 있어야 하는지 합리적 근거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 또 한정책임능력이 아니라 책임무능력을 자의적으로 야기한 경우에는 법률안의 특례규정의 적용이 없다는 점도 문제라고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위에서 본 제1유형에서부터 제4유형까지의 개정법률안보다는 본고가 제시하고 있는 방안이 책임주의와 형사정책적 관점에서 보다 적절하지 않나 생각한다. 즉 형법 제10조 제2항의 심신미약감경 규정을 임의적 감경으로 개정하면 구체적 경위와 사정, 동기,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행위자의 책임에 부합하는 형벌을 선고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아울러 형법 제10조 제3항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 규정을 정비하고, 음주나 마약복용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과 처벌의 흠결을 방지하기 위하여 자초명정죄를 신설하는 방안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절한 방안이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