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약 13
제1장 서 론 29
제1절 문제제기 29
제2절 연구내용 및 범위 34
제2장 이론적 쟁점들 39
제1절 섹슈얼리티(sexuality)에 대한 이해 39
제2절 성폭력을 설명하는 네가지 이론적 관점들 41
1. 성별 불평등론(가부장제론) 42
2. 포르노그라피론 44
3. 문화적 누출이론 46
4. 남성성이론 49
제3절 연구모델과 쟁점들 51
제3장 연구방법 59
제1절 주요 변인의 구성과 측정 59
1. 상품화된 성문화 접촉실태 61
2. 성장기 가정환경 65
3. 성의식 68
4. 폭력 및 성폭력에 대한 태도 75
5. 자아특성 79
6. 성폭력의 측정 82
제2절 조사대상과 표본추출 83
제3절 분석방법 86
제4절 조사대상자의 일반적 특성 86
제4장 한국인의 섹슈얼리티 현주소 91
제1절 성 정체성과 성적 자아상 92
1. 성 정체성 92
2. 성적 자아상 95
제2절 남성성과 여성성 98
1. 성차에 대한 이해 98
2. 남성의 성과 여성의 성 102
제3절 성과 사랑, 그리고 결혼의 관계 108
제4절 폭력의 성애화 : 강간통념 수용도 114
제5절 상품화된 성문화에 대한 태도 119
제6절 성폭력 인지도 122
제5장 성의식 형성기제 분석 129
제1절 이중적 성문화 재생산기제로서의 성의 상업화 129
1. 성의 상업화 발전추세 129
2. 노골적인 성표현물(포르노) 접촉실태 135
3. 매매춘 접촉실태 143
4. 상품화된 성이 성의식에 미치는 영향 151
제2절 성의 차별적 사회화과정 161
1. 성차별주의 161
2. 폭력의 사회화 167
3. 성의 차별적 사회화가 성의식에 미치는 영향 174
제6장 성의식과 성폭력의 관계 183
제1절 성폭력 발생실태 183
제2절 성폭력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 186
1. 성의식 186
2. 상품화된 성문화 191
3. 성차별적 사회화(가부장제적 구조) 197
4. 종합분석 202
제7장 요약 및 결론 213
참고문헌 221
영문요약 225
부록/설문지 227
Ⅰ. 연구목적과 내용
본 연구는 한국사회에서 sex과 gender, 그리고 남녀간의 친밀성 관계구조(structure of intimacy), 특히 성과 사랑, 결혼관계의 결합방식 등이 어떻게 구성되고 의미화 되는지, 그리고 성과 사랑의 의미체 분할이 성의 상업화를 통해 보다 강화되는지, 즉 과연 성의 상업화가 에피소드적 섹슈얼리티의 추구 및 성에 대한 강박적 관심을 가져오는지 등을 중심으로 오늘날 한국인의 섹슈얼리티(sexuality)에 대한 의식과 문화를 접근하고자 한다. 이와 같은 작업을 통하여 한국인의 섹슈얼리티가 성별에 따라 어떻게 달리 작용하며, 그러한 ‘관심’의 격차가 성폭력 유발에 어떻게 투영되는지 등을 통하여, 성폭력 문제접근에 새로운 이해를 도모하고자 한다.
이 연구는 성폭력에 대한 기존의 주요한 논거인 “가부장제론”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로부터 출발한다. 과연, “가부장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현재 “한국사회의 지배적 성문화는 과연 가부장적인가”라는 물음을 새롭게 제기할 시점이다. 분명, 최근 한국사회에서 남녀관계의 모습은 과거 30-40년 전의 「가부장제적(?)」 모습과 분명히 다르다. 과거보다는 분명히 남녀의 사회관계는 보다 평등해졌고, 남녀의 성관계도 보다 자유로워진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폭력의 쟁점은 보다 뚜렷하게 가시화되고 있고, 성 정치의 핵심적 전선으로서 보다 강화될 조짐이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 모든 현상들은 그리 간단하게 “가부장적”이라는 약호로 축약될 수도 없고, 설사 축약된다고 해도 올바른 현실 이해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오늘날의 성폭력을 오히려 “가부장적” 구조의 해체와 근대성(modernity)의 발전궤적으로부터 이해하고자 한다. 과거로부터 현대의 사회생활에서 여성의 성이 남성에 의해 통제되었던 현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하지만, 가부장제적 통제가 깨어지기 시작함으로써 오히려, 남성 섹슈얼리티의 강박적 특성은 보다 쉽게 드러나게 되었으며, 여성에 대한 남성의 성폭력은 더욱 증대하게 된다. 즉, 현대사회에 이르러 여성들이 더 이상 팔루스적 권력(phallic power)의 역할에 공모해주지 않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는 남성성의 충격적 상처들은 쉽게 노출된다. 성적․감정적 평등성에 기초한 친밀성 형성에 문제를 지닌 남성 섹슈얼리티는 그로부터 파생되는 감정적 긴장과 갈등을 에피소드적 섹슈얼리티로 전환시키거나, 그를 통해 해소한다. 바로 그러한 과정에 성폭력이 존재한다. 즉, 성폭력은 감정적 친밀성이 배제된 섹스를 통한 팔루스적 지배를 확인하는 수단이다. 성폭력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지만, 적어도 몇몇 유형은 섹슈얼리티를 에피소드적으로 유지시킨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갖고 있다. 여기에서는 무엇보다도 현대적 정서구조의 한 바탕을 구성하는 “성의 상업화․상품화” 추세에 주목한다. 성의 상품화(상업화) 추세는 남성 섹슈얼리티를 성폭력과 연결시켜 주는 주요한 매개 요소이다. 친밀성 형성에 대한 남성들이 직면한 어려움은 여러 가지 사회문화적․정신분석학적 요인들로 설명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상품화된 성적 이미지”가 초래하는 “에피소드적 섹슈얼리티”에 대한 강박적 관심으로부터 설명할 수 있다.
성폭력 문제에 접근하는 본 연구의 핵심적 관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가부장제적 사회질서의 해체과정-조형적 섹슈얼리티의 창조와 낭만적 사랑복합체의 등장-속에서, (2) “성의 상업화”가 초래하는 “에피소드적 섹슈얼리티”에 대한 강박적 관심이, (3) 남성에게는 남성적 성과 여성적 성을 과잉 코드화하는 한편, (4) 여성에게는 비공모적․저항적 시선을 강화하거나 또는 성을 지나치게 낭만화(권력의 성애화)한다. 결국 (5) 남녀간의 깊은 감정적 심연과 비소통적 상황-결코 서로 이해될 수 없는 남성의 성과 여성의 성-이 출현하게 되고, (6) 탈근대적 변화흐름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화적 지체자들은 전통적 성의식에 집착하여 마쵸(Macho)적 테러(성폭력)로 자신의 억압된 에너지를 분출한다.
이상의 문제의식과 관점에 기반을 두고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연구내용을 다룬다. 섹슈얼리티와 성폭력간의 연관성을 밝히기 위해서, 크게 세가지 수준으로 나누어 분석이 진행된다. 첫째로 한국인의 섹슈얼리티 현주소를 파악하는 것이다. 섹슈얼리티는 세 가지 차원에서 접근한다. (1) 성차(gender)에 대한 이해, (2) 성(sex)행동에 대한 이해, (3) 남녀관계 양식으로서의 성, 사랑, 그리고 결혼의 삼각관계에 대한 이해 등을 포함한다.
둘째, 성 사회화 기제의 문제점과 영향을 살펴본다. 한국인의 성의식 형성기제를 파악하기 위하여, 여기에서는 (1) “상품화된 성”의 접촉실태, 그리고 (2) 성차별적 사회화 과정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검토한다.
셋째, 상품화된 성과 성의식, 그리고 성폭력간의 상관성을 통하여, 상품화된 성의 영향력과 그 효과를 고찰한다. 성폭력 가해모델과 피해모델 분석을 통하여 상품화된 성문화 및 성차별적 사회화가 성의식과 성폭력을 어떻게 매개하는지를 검증한다. 성폭력 발생 메카니즘에 대한 주요 이론적 쟁점들을 실증적으로 재검토함으로써, 이를 기반으로 보다 더 실효성있는 정책대안과 그 방향을 모색하려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다.
Ⅱ. 연구방법
본 연구의 모집단은 2000년 8월 30일 현재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는 16세 이상 60세 미만 남녀이다. 조사를 위한 표본 수는 1,200명(남녀 각기 600명)이다. 표집은 동 지역의 연령별 인구를 알 수 있는 가장 최근 자료인 1995년 인구주택 총조사 보고서(통계청, 1996)를 활용하여, 서울시와 분당 및 일산의 지역별 인구비례 확률표집에 의거하여 서울시 및 신도시 26개 지역구별, 연령별 모집단의 인구비례에 맞춰 결정되었다. 본 조사는 2000년 8월 15일부터 9월 15일까지 성의식 및 성폭력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설계된 구조화된 설문지를 통한 개별 면접방법으로 실시되었다. 조사결과 유효표본수는 남자 593명, 여자 607명으로 총 1200사례이다. 분석방법은 성의 상업화 발전추세 및 그에 따른 성의식 패러다임 변화 및 성행동의 특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성별 및 세대간 비교연구를 중심으로 한다.
Ⅲ. 연구결과
1. 성의식 실태
(1) 성역할 정체성 및 만족도 : 남성들은 한국사회의 성역할 구조와 관련하여 보다 적극적인 수용도와 만족도를 보여주지만,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자신의 성 정체성 수용 및 성역할에 대한 만족도가 낮다. 이와 같은 남녀간의 성정체성 수용도 및 만족도 차이는 남성우월성이 일상적 사회관계에서 제도화된 현실에 기인한 심리적 반영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남녀 모두에게서 발견되는 ‘남성다움’에 대한 지향성은 오늘날 한국사회가 자본주의적 산업질서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으로부터 추론할 수 있다. 현실의 산업구조하에서 여성의 사회참여가 확대되는 추세는 “여성다움”의 사회적 확산 또는 이분법적 성별구조의 와해로 전개되기 보다는 오히려, “남성다움”의 확대된 지향을 강화함으로써, 여성들에게 남성다움의 적극적 수용을 독려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하에서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자신의 생물학적 성(sex)을 긍정적으로 내면화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2) 성차(gender)에 대한 이해 : 남녀간에 남성우월주의 및 성차별주의 수용도에 일정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인구 전체수준의 응답분포를 볼 때, 대체로 “그렇다”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인들은 비교적 남성우월주의적 고정관념 수용도가 높은 편이다. 특히 가부장제적 성별위계에 대해서는 남녀 모두 과반수가 동의한다. 여성들은 일반적인 성차별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동의적이지만, 가정내 남녀관계에 있어서는 오히려 가부장제적 통념을 수용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와 같은 결과는 한국사회내 가부장제적 구조를 강고하게 지탱해주는 토대는 오히려 여성들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공모에 기인한다는 역설을 시사한다. 즉 결혼이 아직 여성에게 사적(private)인 복지제도로서의 의미가 강한 한국사회에서는 낭만적 이성애의 각본은 오히려 곧잘 ‘분절화된 도구적 성의식’으로 역전되고, 여성들의 공모를 통해 오히려 새롭게 가부장제적 성격을 강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3) 남성의 성과 여성의 성 : 전반적으로 남성중심적 성윤리, 남성의 성일탈에 대한 관용 등에 대해 남녀 모두 ‘비동의율’이 ‘동의율’보다 대체로 높다. 다시 말해, 현재 한국 사람들은 남녀에게 각기 다른 잣대를 적용하는 이중적 성윤리를 내면화하는 정도는 비교적 약하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아마도 과거의 통념들에 비추어 두드러진 인식변화는 남성외도에 대한 관용 및 여성의 적극성에 대한 편견 등이 약화되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 여성의 성을 ‘순결이데올로기’와 연결시켜 덕목화하는 통념들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중 성윤리(및 여성순결이데올로기)는 인구특성에 따라 일정한 차이가 있는데, 여성보다는 남성이, 또한 연령이 많을수록, 교육수준이 낮을수록,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그리고 육체노동자층이 다른 직업유형군에 비해서 더 강한 수용도를 보인다.
(4) 성과 사랑, 그리고 결혼의 관계 : 성과 사랑 및 결혼의 삼각관계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남성들은 오히려 성과 사랑, 결혼관계 등을 각기 분절화하여 도구적으로 접근하려는 태도가 지배적이다. 이처럼 분절화된 도구적 성의식은 끊임없는 성에 대한 노골적 또는 강박적 관심 또는 에피소드적 섹슈얼리티의 추구로 이어질 개연성을 내재한다. 한국 남성들은 여성들에 비해 기존의 가부장제의 책임과 부담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듯하며, 따라서 결혼을 낭만적 사랑복합체로서 관계중심적이 아니라 제도중심적인 시각에서 이해하는 경향이 보여준다. 반면, 여성들은 결혼을 “낭만적 사랑복합체”의 실현으로서 이해하려는 태도가 강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성적 요소를 사랑보다는 결혼(가족)에 귀속시키는 성향(소위 정조관념)이 깊게 깔려 있다는 점에서, 여성들의 성의식은 본질적으로는 결혼우위적 관념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분절화된 도구적 성의식 수용도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더 강한 분절적 성의식을 보여준다. 연령면에서 보면, 20대가 분절화된 도구적 성의식을 가장 많이 수용하고 있고, 그 다음으로 10대 및 30대, 그리고 40대와 50대의 순이다. 그리고 교육수준 및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도구적 성의식을 많이 수용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급속한 변화과정속에서, 섹슈얼리티의 근대적인 패턴인 “낭만적 사랑”이념은 점차 세대를 거듭하면서 에피소드적 섹슈얼리티 패턴(“분절화된 성의식”)으로 변화되어 가는 단초를 읽어 낼 수 있다. 이러한 변화 흐름들은 단순히 성개방 담론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어떤 복잡한 정서적 변화들을 담고 있다.
(5) 폭력의 성애화 : “여성과 남성의 비대칭적 관계”에 기반하여, 성(sexuality)이 분절적으로 도구화될수록, 또한 남녀관계의 성이 남성중심적으로 다루어지면, 다음과 같은 두가지 결과를 수반한다. 하나는 에피소드적 섹슈얼리티의 추구이다. 그 전형적인 예를 바로 포르노그라피의 폭발적 증가와 관심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낮은 감정이입과 높은 강도의 섹스에 집중하는 것이 유행하는 현 세태와 밀접히 연관된 흐름이다. 다른 하나는 마쵸(macho)이미지와 이중 성윤리에 의해 생겨난 [새도매저키즘(sado-masochism)]의 사회적 확장이다. 남녀관계에서 새도매저키즘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폭력을 성애화하는 관념들, 소위 ‘강간의 신화’로 불리우는 성과 성폭력에 대한 그릇된 통념이다. 일부 남성들은 강압적 성을 에로틱한 표현으로 연결시키거나, 강간을 오히려 여성이 즐긴다는 관념을 통하여 자신의 마쵸적 이미지를 더욱 강화하기도 한다. 조사결과, “여성의 ‘아니오’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상당수(약 28%)가 긍정한다. 특히 남성들의 경우에는 부정율(29%)보다는 긍정율(46%)이 훨씬 더 높아, 현실적인 남녀관계에서 “예와 아니오”를 둘러싸고 상호 오해가 발생될 가능성이 상당함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통념이 강박적 남성다움과 결합될 때, 일종의 “새도-마쵸키즘적 전이” 현상으로서 성폭력 실행가능성을 더욱 높여줄 수 있기 때문에, 비록 적은 수치라고 하더라도 문제가 될 수 있다.
(6) 성폭력 인지도 : 성폭력 유형중 신체적 성폭력에 대한 인지도가 가장 높고, 그 다음이 언어적 성폭력(성희롱)이며, 상대적으로 정신적 성폭력(스토킹)에 대한 인지도는 낮다. 개념인지도 차이는 특정 차원의 성폭력이 공식적인 담론의 장에서 어느 정도 정치화 되었는가와도 일정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성폭력의 전형적인 형태는 “원치 않는 사람에게 구타 또는 협박으로 성교를 강요하는 행위(평균값 3.66)”로서 나타난다. 실제로 한국인들은 이러한 유형의 성폭력을 가장 심각한 것으로 인식한다. 이를 준거로 볼 때,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로 공론화되고 있는 “원조교제(평균값 3.62)”는 한국인들 인식에는 거의 성폭력 수준에 버금갈 정도로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성추행(평균값 3.40)”이나 “데이트 강간(평균값 3.36)”보다도 오히려 더 높은 수치이다. 이에 비해서 “부부강간(평균값 2.87)”과 같은 유형은 성폭력으로 인지되는 율은 매우 낮다. 최근 직장내 성희롱 및 사이버 성폭력 등을 통해 성정치적 문제로 등장하고 있는 [언어적․시각적 성폭력] 역시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한편, 사회변화에 따라 남녀관계양식 및 친밀성 구조들이 변화되면서, 과거에는 일종의 사랑구애법으로까지 용인되던 ‘스토킹’행위는 이제는 오히려 사생활을 침해하는 범죄 또는 신체안전감을 위협하는 폭력행위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스토킹문제가 공식적인 담론의 장에서 충분하게 쟁점화되지 못한 탓인지, 한국인들은 이에 대한 심각성을 언어적 성폭력, 성희롱보다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스토킹에 따른 협박행위에 대해서만은 비교적 심각한 성폭력으로 인지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성희롱 심각성과 비슷한 수준으로 평가한다. 한편, 성폭력 인지도 및 허용도에 대한 남녀 인식차이는 매우 뚜렷하며, 특히 행위허용도의 폭은 매우 크다. 다시 말해, 남성들이 특정 행위를 성폭력으로 인지하는 수준은 여성들과 차이가 크지 않지만, 그 행위를 허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큰 인식폭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2. 상품화된 성문화 접촉실태
(1) 포르노그라피 접촉경험 :
① 남녀별 경험유무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남자들의 경우에는 81%이상이 그리고 여자들의 경우에는 54%가 한해동안 한 번이상 포르노물을 접한 적이 있다. 한국인들이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접하는 포르노 매체유형은 ‘불법 포르노비디오’다.
② 연령대별로 선호되는 포르노매체에 일정한 차이가 있다. 각 세대별로 향유된 주요 포르노 매체의 변화를 간접적으로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50대의 경우, 가장 빈도높게 접촉하는 매체는 여전히 “도색잡지”이며, 일반적으로 가장 소비율이 높은 포르노 비디오보다도 더 앞선다. 이에 비해 3-40대의 경우에는 “포르노비디오” 소비율이 가장 높다. 또한 10-20대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섹스관련 인터넷 사이트 소비율이 특징적으로 높다. 이러한 연령대별 차이는 각 시대별로 주요 매체의 변화, 즉 인쇄매체에서 영상매체로, 그리고 다시 통신매체로의 주도권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③ 연령이 어릴수록 최초 포르노 접촉시기도 빨라지고 있다. 성의 상업화 추세가 세대를 거듭할수록 더욱 광범위하게 보편화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예이다. 더욱이 각 세대별로 청소년기에 연평균 접촉빈도 역시 연령대가 어릴수록 훨씬 더 자주 접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의 10대들은 거의 대부분 중학교 시기에 포르노 접촉을 시작하며, 20대의 최초 포르노 접촉시기는 중학교보다는 다소 고등학교쪽으로 기울어 있다. 이에 비해 30대의 최초 포르노 접촉시기 평균은 20대보다 늦은 고등학교때로 나타나며, 40와 50대의 경우는 각기 이보다도 더 늦은 시점인 것으로 나타났다.
(2) 성 매매 접촉실태 :
① 세대를 거듭할수록 최초의 매매춘경험 연령이 전반적으로 낮아지는 추세이다.
② 한국 남성들이 가장 즐겨 빈번하게 즐기는 유흥업소 유형은 소위 ‘술집’이다. 전체 남성의 51.4%가 최근 1년동안 한번이상 가본 적이 있다고 보고한다. 한달에 1-2번이상 빈번하게 출입하는 남성들은 전체의 약 5% 정도이다. 그 다음으로 자주 이용하는 업소는 전문 매춘업소, 그리고 안마시술소 또는 증기탕이다. 각기 약 11-2%정도가 최근 1년동안 한번이상 가본 적이 있다고 한다. 이 밖에 전화방, 남성휴게방 등 신종향락업소 및 퇴폐이발소 등도 각기 9% 정도가, 또한 티켓다방 이용경험도 약 7%가 보고하고 있다.
③ 남자 593명(유효사례수)중 최근 1년동안 매매춘을 경험한 사람은 105명, 약 18%이다. 즉 16세이상 남성 5명중 약 1명꼴이 지난 1년동안 매매춘을 경험한 적이 있다. 구체적인 매매춘 경로를 보면, 한국 남성들이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매춘경로는 역시 “단란주점 및 유흥주점에서” 알게 된 접대부와 소위 “2차”로 행해지는 경우였다. 이와 같은 형태의 매매춘을 경험한 사람이 61명으로 약 10%였다. 두 번째로 빈번한 매춘 유형은 소위 “전통형 매매춘”의 대표적인 유형인 “사창가 및 여인숙(여관) 등 전문업소”를 찾아가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매매춘 경험율은 약 7%로 조사되었다. 세 번째로 빈번한 매춘유형은 “안마시술소 및 증기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매춘행태로서 전체의 4%정도가 최근 1년동안 경험율을 가지고 있다.
3. 성의식 형성기제
(1) 상품화된 성문화 접촉과 성의식 : 전반적으로 볼 때, 상품화된 성 접촉은 분명 성차별적인 관념과 도락적 및 도구적 성의식, 더 나아가 강간통념들(가령 강압적 성의식, 물화된 여성성, 강간신화적 여성상 등)과 정(+)적인 관계가 있으며, 또한 성폭력 문제를 보다 사소한 것으로 취급하려는 태도(낮은 성폭력 인지도와 높은 성폭력 허용도)와도 정(+)적으로 연관된다. 남성들은 포르노 등을 통해서 여성들이 심지어 처음에 성적 진전을 거부한다고 하더라도 성적인 강압에 긍정적으로 반응할 것이라는 믿음을 학습한다. 이와 같은 강간신화에 대한 믿음은 남성들의 성역할을 구성하는 주요인자이며, 이러한 성역할태도는 포르노 및 성폭력에 대한 반응을 매개하게 된다. 물론 관계의 인과효과의 방향성은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즉 성차별적 고정관념과 도락적 및 도구적 성의식, 그리고 강간통념들이 강한 사람들이 상품화된 성에 대한 접촉을 더 선호한다고 추정할 수도 있다. 양자간의 인과순서를 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앞서 최초 포르노 접촉연령이 낮을수록 도락적 성충동 및 성폭력 인지도가 낮다는 점에 주목해 본다면, 상품화된 성에 대한 지속적 접촉이 성의식을 일정하게 왜곡시키고 강간통념을 강화시켰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 성차별적 사회화와 성의식 : 남녀 모두 이분법적인 성역할 사회화를 많이 경험할수록 성차별적인 고정관념을 수용하는 정도가 높다. 남자집단의 경우에는 이분법적 성역할 사회화 경험이 강할수록 이중적 성윤리가 높음과 동시에 도락적 성충동을 표출하는 경향도 높으며, 여성을 물화된 이미지로 이해하려는 태도 및 여성이 오히려 강간을 즐긴다는 식의 강간신화적 통념을 수용하는 정도가 더 높다. 여성의 경우에도 이분법적 성역할 사회화를 많이 경험할 수록 스스로 물화된 여성이미지를 갖거나 폭력을 오히려 성애적 표현으로 수용하는 강압적 성의식을 지닌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경향은 바로 차별적인 성역할 사회화가 남성들 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강간 피해자가 되기를 학습시키는 효과가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이에 대한 보다 분명한 증거는 여성이 이분법적 성역할 사회화 경험이 많을수록 성폭력 인지도가 약하고 성폭력에 대해 보다 허용적이라는 사실이다.
4. 성폭력 발생실태
(1) 피해실태 : 조사대상 여성 607명중 지난 한 해(1999. 9.-2000. 8.)동안 성희롱, 성폭력, 스토킹 등 세 가지 유형 중 어느 하나라도 피해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고 응답한 여성은 전체의 30.5%이다. 현재 한국의 여성 3명 중의 1명은 성폭력의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유형별 피해율을 보면, 공공장소에서 성희롱을 경험한 여성은 58명으로 9.6%이고, 최근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음란전화 및 온라인 등을 통한 성희롱을 경험한 경우는 92명으로 15.2%로서, 이러한 언어적인 형태의 성폭력을 경험한 경우가 전체의 19.2%이다. 성추행 피해사례는 107명으로 전체의 17.7%나 되고, 강간을 당한 적이 있거나 당할뻔 한 사례는 31명으로 5.1%이다. 이렇듯 한국사회에서 심각한 성폭력 발생율은 매우 높다. 성추행을 포함하여 신체적 성폭력을 경험한 여성은 전체의 20.2%나 된다. 한편, 최근 새로운 형태의 괴롭힘으로 등장하고 있는 ‘스토킹’ 피해경험을 보고한 경우는 40명으로 6.6%로 조사되었다.
(2) 가해실태 : 지난 한 해동안 16세이상 60세미만의 조사대상 남성 593명중 57명인 9.6%가 설계된 7가지 세부유형 중 하나라도 행한 적이 있다. 고의적으로 공공장소나 전화, PC 등으로 성희롱을 행한 적이 있는 남성은 4.9%이고, 강간 등 신체적인 성폭력을 행한 적이 있는 경우는 5.3%이다. 신체적 성폭력의 구체적인 유형을 보면, 성추행을 한 적이 있는 경우가 2.7%, 원조교제 등 미성년자에 대한 매춘행위를 한 적이 있는 경우가 1.4%, 어린이에 대한 성추행을 한 사람은 0.7%, 그리고 강간(미수포함)을 행한 적이 있는 경우는 2.0%였다. 그리고 최근 1년동안 집요한 구애행위 등으로 타인을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스토킹’ 행위를 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경우는 2.4%로 조사되었다.
5. 상품화된 성문화가 성의식 및 성폭력에 미치는 영향
(1) 성폭력 유발환경으로서 상품화된 성문화의 영향 : 가해-피해의 이분법적 분석모델을 통해 볼 때, 성폭력의 유발환경으로서 상품화된 성문화의 존재는 성폭력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지니며, 성차별적인 사회화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고 강력하다. 연구결과는 전반적으로 상품화된 성접촉(포르노와 매매춘)은 남성집단에게 성차별적 고정관념 및 강간통념, 더 나아가 성폭력 허용도를 강화함으로써, 성폭력의 잠재적 예비군을 형성하는 기제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즉 남성들은 상품화된 성적 이미지나 경험을 통해서 여성을 사랑의 주체라기보다는 욕망의 대상으로 삼기 쉬우며, 성적인 강압에 긍정적으로 반응할 것이라는 믿음을 학습하기 쉽다.
다른 한편으로 상품화된 성문화의 존재는 여성집단에게도 도구적 및 도락적 성의식을 강화하고, 성폭력 인지도를 약화시켜서 남성강압적 성문화에 오히려 공모하도록 독려하는 기능을 지닌다. 즉 여성에게도 포르노접촉 효과는 강압적 성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케 함으로써, 암묵적으로 잠재적인 강간피해자로서의 심성을 학습하도록 기능한다. 즉 여성들은 성관계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신체적인 폭력(무력)을 예상해야 한다는 점을 학습할지도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Brownmiller(1981)는 여성이 성역할사회화를 통해 피해자가 되도록 학습된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2) 성폭력 가해요인으로서 “남성성” 및 “도구적 성의식” : 성폭력 가해모델 분석결과, 우리는 스스로 “남성답다”고 평가하며, “성․사랑․결혼간의 관계를 도구적․분절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 남성들이, 그리고 “성폭력에 대한 허용도”와 “폭력에 대한 허용도”가 높은 남성들이 성폭력 가담율이 높은 것을 발견하였다. 이와 같은 결과는 본 연구의 주요쟁점인 마쵸(Macho)에 대한 강박적 관점이 성폭력으로 이끌게 된다는 주장을 잠정적으로 지지한다. 흔히 남성다움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때때로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한다. 그 예로서 마치스모(machismo)를 들 수 있는데, 이것은 자신의 남성다움에 자신감을 잃고 불안해진 남성들이 여성을 성적으로 정복하거나 폭력을 쓰거나 여자들에게 무모한 짓을 함으로써 자신이 남자인 것을 과시, 과장하고 수시로 확인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또한 본 연구결과는 ‘분절화된 도구적 성의식’은 기본적으로 ‘성과 사랑의 이분법적 분리’를 의미하여, 이것은 친밀성이 배제된 에피소드적 섹슈얼리티 추구로서 성폭력의 손쉬운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반면, 흔히 성폭력과의 관련으로 주목되던 ‘강간통념’은 오히려 이러한 요인들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그 효과가 약하다.
(3) 성폭력에 대한 남녀간의 인식 격차의 강화 : 한국인들의 섹슈얼리티 및 형성기제 분석에서, 주요한 두가지 변화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성차(gender)와 관련한 사회문화적 구성방식이 시대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분명 과거의 가부장제적․남성우위적 성적 질서로부터 점차로 성차별주의의 약화 경향, 즉 성적 평둥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성의 상업화 추세가 점진적 발전함으로써, 상품화된 성문화 접촉이 점차 저연령화되고, 특히 남성집단에서는 보다 광범하게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흐름의 방향으로 인해, 성의식 및 성폭력을 둘러싼 남녀간의 인식격차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오히려 더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 가설에 대한 검증결과, 상품화된 성문화의 존재로 인하여 젊은 세대들에 있어서 남녀간의 인식격차가 점차 더 강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요컨대, 한국사회에서는 전반적으로 성별 불평등이 해소되고, 친밀성의 구조변동이 전개되고 있지만, 성의 상업화 추세가 세대를 거듭하면서 발전하는 추세여서, 성폭력에 대한 성별 인식간극을 보다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Ⅳ. 제 언
본 연구결과가 성폭력 정책방향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성폭력 문제는 제도적 차원에서의 성별 권력관계(gender relationship)적 접근만으로서 해결전망을 갖기 어렵다. 성차별주의(sexism)에 대한 비판적 접근방법은 분명 성폭력 피해자 중심 해법일 수는 있지만,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효과적인 대안은 아니다. 왜냐하면, 성폭력 가해를 설명하는 주요한 매개 기제는 성차(gender)에 근거한 구조요소라기 보다는 오히려 섹슈얼리티와 연관된 성문화적 특성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성폭력 해결의 정책방향은 근대적 정서구조에 조응한 새로운 남성 섹슈얼리티 모델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새로운 섹슈얼리티 모델은 과거의 이항대립적인 성(sex 또는 gender)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율과 평등성에 기초한 새로운 “자아” 구성요소가 되어야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마쵸적 섹슈얼리티”로 강화된 남성들의 문화적 지체 현상을 회복하기 위한 다양한 적응 프로그램 및 감수성 훈련 등을 통한 가해자 처우(교정) 프로그램이 요구된다. 그 핵심적 내용은 성적 친밀성 구성능력(친밀한 관계맺기)의 증대, 감정적 소통능력을 회복하는 데에 있다. 이와 더불어 성과 사랑의 이분법적 분리, 도구적 성의식 또는 에피소드적 섹슈얼리티를 오히려 정상적인 것,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는 문화적․정서적 환경(상품화된 성)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