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요약 13
제1장 서 론 25
제1절 연구의 목적 25
제2절 서술의 과정 28
제2장 형사입법의 한계기준으로서 법익개념 31
제1절 법익개념의 역할과 법익패러다임의 변화 32
1. 법익개념의 의미와 기능 32
가. 주관적 권리개념에서 추상적 가치개념으로 32
나. 비판적 법익개념과 실질적 범죄개념 34
다. 법익개념의 비판적 기능 36
2. 위험사회에서 법익패러다임의 변화 37
가. 법익보호의 전치화 38
나. 새로운 (보편적) 법익의 창설 39
다. 적극적 일반예방의 르네상스 40
3. 상징적 형사입법의 문제점 44
가. 상징적 형법의 개념 44
나. 상징적 형사입법의 문제점 45
다. 형사특별법의 상징적 성격 46
제2절 형법제한적 법익관념에 대한 비판과 재구성 49
1. 체계비판적 법익개념에 대한 비판과 평가 49
가. 법익개념의 기능장애 49
나. 법익개념의 절대적 해결방식 51
다. 헌법적 관점에서의 비판 52
2. 법익론과 동떨어진 형법제한의 관념들 54
가. Naucke의 주관적 권리관념론 54
나. Amelung의 사회보호론 55
다. Jakobs의 규범보호론 56
3. 법익론에 기초한 형법제한관념의 재구성 59
가. Hassemer의 사회적 합의에 중심된 법익론 60
나. 인격적 법익론 62
다. 간섭법을 통한 보편적 법익문제 해결 63
제3절 행위규범 입법의 한계기준으로서 법익과 범죄유형 64
1. 법익개념의 규범적 근거지움 65
가. 객관적 가치질서 65
나. 사회현실의 고려 66
다. 형법적 법익의 내용과 제한가능성 67
2. 행위규범 입법의 보충적 정당성 기준으로서 범죄유형 69
가. 법익과 침해방식의 구별필요성 69
나. 형사입법의 정당성판단에서 범죄유형의 의미 71
다. 개별적 범죄유형에 따른 형사입법의 정당성 72
3. 형사입법에 대한 규범통제의 현실 74
가. 입법자의 포괄적인 입법재량 74
나. 형사입법의 한계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례 75
다. 형사입법자의 개념확정권 77
제3장 형사입법의 헌법적 정당성과 한계 79
제1절 형사입법과 기본권 79
1. 기본권의 보호영역 80
가. 범죄와 기본권의 보호영역 80
나. 개별적 자유권과 기본권의 보호영역 82
다. 형사입법과 평등권 83
2. 형사입법과 기본권제한 86
3. 본질적 내용의 침해금지 87
제2절 비례원칙 89
1. 입법목적의 정당성 90
가. 입법목적에 관한 전통적 견해 90
나. 목적-수단의 관계에서 형사입법의 목적 91
다. 형사입법의 목적성과 비례원칙의 상관성 92
2. 적합성원칙 93
가. 적합성원칙의 내용 93
나. 적합성원칙과 입법목적과의 관계 94
다. 적합성원칙과 형벌목적 및 경험적 결과의 수용 95
3. 필요성원칙 96
가. 필요성 판단의 기준 96
나. 보충성 원칙과 형벌규범의 대안 98
다. 형사입법의 영역에서 필요성원칙의 문제점 99
4. 균형성원칙 100
가. 균형성원칙과 책임원칙 100
나. 균형성원칙의 구체적 문제영역 102
다. 균형성 판단의 어려움 106
5. 비례원칙에 관한 헌법재판소 결정례의 검토 107
가. 형벌법규 통제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기본입장 108
나. 헌법재판소의 주요 결정례 109
(1) 법정형의 하한이 지나치게 상향조정된 입법 109
(2) 가혹한 법정형의 입법 112
(3) 전단적 형벌의 입법 114
(4) 법정형공간이 지나치게 넓은 입법 116
다. 헌법재판소 판례의 문제점 118
제3절 명확성원칙 120
1. 형사입법의 영역에서 명확성원칙의 의미 121
가. 명확성원칙의 의의 121
나. 명확성원칙의 현행법적 근거 122
다. 명확성원칙의 규범과 실무의 불일치 124
2. 명확성원칙의 개별적 내용과 판단기준 125
가. 행위규범의 명확성 125
나. 제재규범의 명확성 129
다. 위임입법의 한계 131
3. 명확성원칙에 관한 판례와 문제점 132
가. 명확성원칙의 위반을 긍정한 판례 133
나. 명확성원칙 위반을 부정한 판례 134
다. 형사입법에 대한 판례의 의미 137
제4장 형사입법의 개선전략 139
제1절 실체법적 개선전략 140
1. 현행법의 상태 140
2. 헌법적 차원의 개선전략에 관한 논의 141
가. Gallwas의 제안 141
나. Jäger의 제안 142
다. 검토 143
3. 형법적 차원의 개선전략 144
가. 법익서열에 따른 법정형의 조화 144
나. 형사특별법의 폐지와 예시규정의 활용 145
다. 사회유해성조항의 도입 148
라. 행정형벌의 비범죄화 150
제2절 실험적 형사입법에 관한 논의 152
1. 실험적 형사입법의 의미 153
가. 실험적 입법의 개념 153
나. 법률실험의 예 154
다. 실험적 형사입법의 논의실익 156
2. 법률실험의 등장배경과 형사입법 157
가. 법률개념의 변화 157
나. 입법홍수와 법률의 질적 저하 157
다. 실험적 형사입법의 요청 158
3. 실험적 형사입법의 허용성 159
가. 죄형법정주의 159
나. 입법자의 보호의무 160
다. 비범죄화의 영역에서 실험적 형사입법 161
제3절 절차최적화를 통한 합리적 형사입법 161
1. 과학적으로 뒷받침된 형사정책 162
가. 우리나라 정책자문에서 형법학의 위치 163
나. 독일 정책자문에서 형법학의 위치 166
다. 과학적으로 뒷받침된 형사정책의 필요성 167
2. 형법학의 입법절차참가에 관한 대화이론적 모델 170
가. Habermas의 대화이론 170
나. 대화이론적 모델에 관한 반론 172
다. 형사입법과정에서 법적 대화의 필요성 173
3. 과학적 정책자문의 구체적 내용 174
가. 입법절차 최적화의 개별적 요건 175
나. 형사입법의 영역에서 학문과 정치의 역할분담 176
다. 자문기구의 상설화 179
제5장 결 론 181
참고문헌 187
독문요약 199
I. 서 론
헌법 제40조 및 제37조 제2항에 따라서 입법자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에 필요한 경우에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를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 그러나 헌법은 어떠한 부정적 행위에 대하여 어떠한 법형식을 통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적인 지침에 대해서는 규정해 두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학계와 실무에서는 입법자의 입법행위에는 광범위한 재량이 인정된다는 원칙적인 방향만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입법자의 형성적 과제는 기본권의 보장과 마찬가지로 민주적 헌법의 창설적 요소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사항을 어떠한 방식으로 규율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입법자 자신이 결정할 문제에 속하며 이러한 재량의 여지는 폭넓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법이나 행정법과 같은 법 영역들과는 달리 형사입법의 영역에서는 규범위반에 대한 법효과가 본질적으로 인간이 감내하기 힘든 해악을 포함하고 있는 형벌로 무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입법재량의 자유는 내용적으로 더 가중된 제한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없이 많은 형벌법규가 양산되고 있는 오늘날의 입법현실을 보면, 형사입법에 기본권보장의 고려보다는 효율성의 고려가 더 깊이 깔려있는 것 같다. 형사입법이 장래에 대한 심도 있는 전망을 갖추지 않은 채 점점 더 정치적인 일상사무로 처리되는 경우에는 법률의 홍수와 이로 인한 과잉규제의 문제만 야기하게 되고 특정사안에 대한 형법적 대처의 선호는 문제를 임시방편적으로 해결할 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형사입법자의 자의적이고 비합리적인 형벌법규의 제정을 통제할 한계규범을 논의할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란 것이 아니다. 본 연구에서는 행위규범 입법의 한계기준으로서 법익보호원칙, 제재규범의 한계기준으로서 비례원칙 및 행위규범과 제재규범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한계기준으로서 명확성원칙에 관하여 그 내용과 문제점을 검토하여 이를 기초로 오늘날 특히 문제되고 있는 입법단계에서의 형벌법규의 내용적 불충분성과 절차적 소홀함을 해결하기 위한 최적의 전략을 제시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Ⅱ. 형법제한의 기준으로서 법익보호사상의 역할과 문제점
오늘날 형법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법익개념은 형사입법의 영역에서 범죄화의 한계를 설정해 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소위 형법제한의 기준으로서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러나 어떠한 행위규범이 형법의 규율대상으로 될 수 있는지에 관한 기준을 제시해 주는 법익개념은 오늘날 그 비판적 기능이 상실되었다고 비판을 받고 있다.
1. 법익개념의 역할과 변화
근대 법익보호사상은 형법존립의 정당성을 생명, 신체, 자유, 재산과 같은 주관적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이해하였다. 형법은 인간의 공동생활의 조건을 유지하기 위하여 불가결하다고 판단되는 사회유해적 행위에 대해서만 투입되어야 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여기서 법익보호사상은 형법투입의 최후수단성, '의심스러울 때에는 시민의 이익으로' 원칙과 결부되어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후의 산업자본주의와 오늘날의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법익개념은 더 이상 주관적인 권리로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가치' 내지 '규범'과 같은 추상적 개념으로 재구성되었고 여기서 추상화되고 일반화된 법익개념은 형사입법에 아무런 비판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었다. 법익개념의 체계비판적 기능의 역할부재 현상은 20세기 후반기 이후의 위험사회에서 보다 명확하게 나타난다. 형사입법은 더 이상 침해에 대한 대응수단이 아니라 위험에 대한 대응수단으로 변화되고 범죄화의 근거도 사회유해성이 아니라 사회위험성이라는 전단계적이고 확장적인 길에 서 있다. 이 점은 오늘날 형사입법의 현실에서 추상적 위험범과 보편적 법익의 지속적인 증대, 특히 우리나라의 수많은 형사법에서 볼 수 있는 상징적 형사입법의 경향 등을 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요컨대 외국에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형사입법에서도 소극적 일반예방이론에 입각한 형벌만능주의와 국민의 범죄에 대한 두려움과 처벌요구가 중심에 위치해 있다.
2. 적극적 일반예방론과 형사입법에 대한 평가
그러면, 입법자가 특정한 행위태양을 범죄화하고 수많은 형벌규범을 투입함으로써 얻고자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형법학에서는 형사입법의 목적을 범죄예방에 있다고 이해한다. 여기서 소극적 일반예방론에 대하여 행위자를 범죄투쟁의 수단으로 전락시킴으로써 인간존엄성(헌법 제10조)에 반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형법임무의 패러다임은 국민일반의 규범질서에의 신뢰, 규범준수의식의 유지·강화를 내용으로 하는 적극적 일반예방으로 변하게 되었다.
적극적 일반예방의 개념내용과 이에 관한 이해방식은 매우 다양하지만, 적어도 적극적 일반예방을 '형법을 통한 사회교육' 또는 '형법을 통한 도덕형성'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형법이론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다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적극적 일반예방은 국민의 자발적인 규범신뢰를 목표로 하는 것이지, 추상적 위험범이나 보편적 법익의 범죄를 입법을 통한 국민교육이나 도덕형성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결국 무엇이 형법적 법익으로 인정하며, 어떠한 행위를 형법적 법익의 포착범위에서 제외시킬 것인지, 나아가 지금의 사회에서 무엇이 적절한 형사입법이고 무엇이 부당한 (상징적) 입법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법익론 그자체에서 찾기는 힘들다. 오히려 법익 뿐만 아니라 법익론의 배후에서 무엇을 형법적으로 보호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사회적 요인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3. 행위규범 입법의 정당성 기준으로서 법익개념과 범죄유형
형사입법의 한계기준으로서 체계비판적 법익개념이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한다는 비판적 견해가 지속적으로 의미를 얻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익개념이 특정한 행위의 당벌성에 관한 형사정책적 심사를 함에 있어 가장 의미 있고 기초적인 기준을 제공해주는 논증수단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법익개념은 국가적 처벌권의 한계에 관한 문제점을 인식하게 하고 이에 대한 합리적인 해결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다만, 법익개념 그 자체만으로는 형사입법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완결적인 기준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특정한 부정적 행위가 존재하고, 그 이면에 있는 이익이나 가치를 형법적 법익으로 승인하는 것은 입법자의 범죄화 결정에 하나의 '필요조건'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형법적 제재로 무장한 범죄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법익보호원칙 이외에 형사입법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충분조건'으로서 개별적 범죄유형(Deliktstypen)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법익보호원칙과 범죄유형의 관계로부터 특정한 이익이나 가치가 형법적 법익에 포함되는 경우에도 그것을 구체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범죄유형으로서 특히 '추상적' 위험범을 입법하는 것은 가능한 한 회피하여야 한다. 추상적 위험범을 입법하는 경우에는 개별사건에서 법관이 입법자의 입법당시의 위험성 예견을 수정하는 것이 배제되어서 결과적으로 헌법상의 권력분립원칙에 위배될 위험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추상적 위험범의 입법이 정당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보호될 법익의 질이 매우 높아야 할 뿐만 아니라 입법자는 입법당시에 위험성 존재여부에 관하여 입증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적 요청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형사입법의 현실에서는 입법자의 입법재량이 적절하게 통제되지 못하고 있다. 현행 헌법질서 속에서 형사입법자는 형법의 투입에 관한 모든 개념확정권을 가지고있으며 여기서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입법재량을 향유하고 있기 때문이다.헌법재판소도 이 점을 원칙적이고 분명하게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입법자의 입법형성권의 자유가 언제든지, 어떤 내용의 형법규범이든지 그것이 형사입법자의 자유로운 처분에 내 맡겨진 것이라고는 이해할 수 없다. 형법에 관한 형사입법자의 임무는 오로지 사회유해적 행위로부터 현존하는 사회의 보호라는 헌법적 판단에 의하여 형벌규범이 필요한 보호법익의 범위가 확정된다. 따라서 형사입법자는 추상적 위험범이나 보편적 법익의 범죄를 탄생시킬 수는 있지만, 이 규범의 입법을 통하여 중요한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해서만 규율목적에 합치된다.
Ⅲ. 형사입법의 헌법적 정당성과 한계
형사정책에 관한 입법자의 규범적 판단은 입법과 법률해석의 원리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헌법적 규범에 구속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입법자를 구속하는 헌법적 지침들은 매우 다양하지만, 특히 형사입법과 관련 지워보면, 평등원칙(헌법 제10조), 비례원칙(제37조 제2항), 명확성원칙(제12조 제1항) 등이 있다.
1. 형사입법과 기본권
형사입법은 기본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제한을 의미한다. 여기서 범죄행위가 기본권의 보호영역에 포함되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헌법의 해석론적 관점에서는 범죄행위가 기본권의 내재적 제한에 해당하기 때문에 기본권의 보호영역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견해가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형사입법의 영역에서는 입법자가 특정한 행위를 범죄행위로 규율하고자 하는 이익과 범죄화로 인한 개인의 기본권침해 간에 이익형량이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형사입법의 단계에서 범죄적 행위는 당연히 기본권의 보호영역에 포함된다.
현행 헌법에는 개별적인 자유권적 기본권들이 규정되어 있지만, 형사입법에서 본질적인 의미를 가지는 기본권은 평등권(헌법 제11조)이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도 입법권이 평등권에 기속될 뿐만 아니라 평등권이 기본권 제한입법의 한계가 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러나 '평등'과 '자의금지'의 포괄적인 개념내용은 형사입법자에 대한 입법의 한계를 분명하게 제시해 주지 못한다. 현행법에 따를 경우, 평등원칙에 위반되었다고 평가되는 사례는 분리취급이 더 이상 형사입법자의 재량영역의 범위에 머물지 않고 따라서 '명백하게' 자의금지로 나타날 경우에 국한된다. 입법자가 당해 형사입법을 보다 더 목적 합리적으로 구성할 수 있었거나 더 적절하게 구성할 수 있었다는 사정만으로는 평등원칙의 위반이라고 평가하기 힘들다.
예컨대 상해치사죄(3년 이상의 징역)와 강도치사죄(10년 이상의 징역)를 비교해 볼 때, 이들 범죄구성요건은 모두 결과적 가중범이며 과실로 피해자의 사망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러나 상해치사죄와 강도치사죄간에 현저한 법정형의 차이를 두고 평등원칙에 위반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상해치사죄와 강도치사죄(및 강간치사죄)간에 서열관계를 확인하는 일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형벌법규를 개별적으로 비교함으로써 평등원칙에 위반 되었는지의 여부를 판단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며 헌법재판소에 의한 통제도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2. 비례원칙
헌법 제37조 제2항과 법치국가원리에서 도출되며 책임원칙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는 비례원칙은 목적설정의 정당성, 적합성원칙, 필요성원칙 및 균형성원칙이라는 부분원칙을 포함하고 있다. 입법목적의 영역에서 형사입법자는 규율하고자 하는 사항이 공공복리에 해당한다고 생각되는 한 광범위한 선택의 자유를 누리고, 나아가 헌법상의 규정(제37조 제2항)도 소극적 심사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입법자의 목적은 현행 헌법이 명시적으로나 내재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사항 이외에는 입법목적이 정당화된다.
적합성원칙은 형사정책적 목적을 위해 입법자가 투입한 수단이 처음에 의도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적합한 수단인지를 검토하도록 요구한다. 적합성판단의 과정에서는 이론적 검증뿐만 아니라 경험적 검증도 요구되며 그 결과는 입법에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선택된 수단이 목적달성을 위하여 '완전히' 또는 '객관적'으로 부적합한 경우에만 위헌으로 되기 때문에 결국 형벌이라는 법효과를 투입하여 입법자의 목적달성의 개연성이 높아지는 경우에는 적합성의 원칙을 충족한 것으로 평가된다.
필요성원칙은 입법자로 하여금 여러 적합한 수단 가운데 그것의 사용이 최소의 침해 효과를 가지는 수단을 선택할 것을 요구한다. 소위 형법투입의 최후 수단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형벌규범을 입법함에 있어 형사입법자는 예컨대, 벌금형, 다이버전, 원상회복 등과 같이 동일한 사안에 대하여 행위자에게 가장 피해를 적게 주는 수단을 깊이 고려해야 한다. 형법적 제재가 아니더라도 입법자가 의도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곳에서는 예컨대 민사법적 수단이나 질서위반법적 수단(예컨대 과태료)을 투입하여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광범위하게 인정되고 있는 입법형성의 자유는 형법투입의 보충성원칙을 외면해버리게 만든다.
형사입법의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균형성원칙은 입법자가 촉진하려는 목적의 가치가 기본권을 통해 보호된 법익에 대한 제한의 강도와 비례관계에 있어야 할 것을 요구한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문제로 되는 것은 법정형의 하한을 과도하게 상향조정하는 입법이다. 이러한 현상을 현재 형사특별법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균형성원칙의 적용에 관하여 헌법재판소는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규범통제가 문제로 되었던 거의 모든 사례에서 헌법재판소는, 입법자의 입법판단이 현저하게 균형을 잃었거나 조문체계상의 '명백한 모순'이 드러난 경우에 한하여 '위헌'의 방법을 선택함으로써 입법자를 통제하고 있다.결국 헌법재판소는 애초에 입법자가결단한 입법내용을 규범적으로도 사실적으로도 적극적으로 변경할 수 없다. 규범적인 관점에서는 입법자에게 민주적 정당성이 더 가중되게 주어져 있으며, 사실적인 관점에서는 당해 조항이 위헌으로 될 경우에 나타날 수 있는 사회적·정치적 동요를 감내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3. 명확성원칙
기본권제한의 한계를 의미하는 명확성원칙은 헌법 제12조 제1항 후단에 규범적 뿌리를 두고 있다. 명확성원칙이란 형벌법규를 창설함에 있어 구성요건이 모호한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 가능한 한 명확하게 규정되어야 하고, 법효과도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후기산업사회에서는 다양한 위험원에 대한 탄력적 적응을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법률의 명확성보다는 불확정적이고 일반조항적인 법률개념, 백지형법이나 위임입법의 요구가 점증되고 있다. 명확성원칙을 판단하는 기준에 관하여 견해가 대립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불특정 개념들이 항상 해석이 가능해야 하며 그 개념의 내용에 관하여 규범수신자들이 항상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아가 명확성원칙은 제재규범의 명확성도 포함한다. 예컨대 공연음란죄, 폭행죄 등과 같이 법관의 자의가 개입할 정도로 다양한 형벌의 종류를 규정해 두는 경우에는 명확성원칙에 위반될 여지가 크다. 지금까지 형벌법규의 명확성원칙에 관한 판례는 적지 않게 존재하지만 헌법재판소는 대부분의 사례에서 명확성원칙의 위반을 부정했다. 그러나 당해 구성요건요소가 불명확함에도 불구하고 판례가 명확한 구성요건의 요구를 좀 더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입법작업에 대해 그다지 바람직스럽지 못한 영향을 준다. 오히려 형벌규범의 구성요건명확성여부에 관한 보다 엄격한 감시는 입법자에게 효과적인 자극제로 작용할 것이다.
Ⅳ. 형사입법의 합리적 개선전략
법익개념, 평등원칙, 비례원칙 및 명확성원칙이 규범적인 관점에서는 형사입법의 제한원리로 인정되고 있지만, 입법의 현실과 규범통제과정에서 어느 정도로 정확하게 지켜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입법단계에서는 각 정당의 당파적 이해의 대립, 이익단체의 로비, 언론매체의 자극적인 보도경향 등으로 인하여 헌법적 기준에 적합한 입법이 되기 힘들다. 법안에 관한 상세한 검토 없이 입법적 결단만 강조하는 입법자의 행태도 합리적 입법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법원과 헌법재판소에 의한 입법권의 사후통제도 효과가 미흡하다. 이들은 사법소극주의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보다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형사입법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으로 논의되어 오던 실체법적 차원의 개선전략 뿐만 아니라 절차적 관점에서의 개선전략도 검토해 보아야 한다.
1. 실체법적 개선전략
형사입법자의 자의를 방지하기 위한실체법적 개선전략은 헌법적 차원과 형법적 차원의 그것이 있다. 헌법적 차원에서는 헌법에 명문으로 형사입법에 관한 주요지침을 규범화시키는 것이다. 이 방식은 바람직 하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의 헌법현실에서는 당장 실현하기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의 법현실에서 헌법개정은 특정한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만 실현가능하기 때문이다.
형법적 차원에서는 ① 법익서열에 따라서 법정형을 조화시킬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형법과 특별형법은 신체적 법익보다 재산적 법익을 더포괄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예컨대 상해죄의 법정형이 7년 이하의 징역인 반면, 사기죄의 법정형은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규정되어 있다. 현재의 무질서한 법정형 구성체계는 법익의 가치질서에 상응하게 재구성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② 나아가 법정형을 가중하는 형사특별법은 형법의 통일적 체계라는 관점에서 일반형법으로 편입되어야 한다. 특별형법의 규정을 일반형법으로 편입시키는 경우에는 입법기술적으로 독일 형법의 예시규정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③ 법정형이 중하지만, 그 구성요건이 간략하게 규정되어 있는 경우에는 당해 구성요건이 원래 의도하지 않았던 사안까지 포섭될 수 있는데, 이를 회피하기 위해서는 사회에 유해한 행위만 처벌한다는 '사회유해성조항'을 입법할 필요가 있다. ④ 행정상 의무이행의 확보수단으로 규정되어 있는 형법적 법효과(징역 또는 벌금)들은 형벌법규의 과잉현상을 초래하고, 국민의 준법정신을 약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형법적 제재는 과태료나 질서위반금과 같은 행정제재로 변경되어야 한다.
2. 실험적 형사입법에 관한 논의
형사입법의 합리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한 방편으로 실험적 형사입법이 논의되고 있다. 실험적 입법이란 일반적으로 평가의 목적으로 제정된 규범을 담고 있으며 장소적·시간적으로 한정되어 있는 입법으로서 기한 만료시에 입법평가를 받아 새로운 판단(개정, 폐지, 유지)이 예정된 입법을 말한다. 실험적 입법은 종종 법률내용에 대한 사후검증(Evaluation)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실험적 형사입법은 형법규범의 개혁과 관련하여 법익보호를 위한 수단들 중에서 가장 경한 수단을 찾는 방편으로 인식되고 있다. 즉 신범죄화와 비범죄화의 영역에서 형벌법규의 필요성을 평가하는 수단으로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실험적 형사입법은 죄형법정주의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으며 입법자의 보호의무가 인정되는 범위에 대해서는 허용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실험적 형사입법이 본질적인 의미를 가지는 부분은 비범죄화에 관한 입법자의 결단에 의문이 존재할 경우이다.
3. 절차최적화를 통한 합리적 형사입법
지금까지 형사입법은 헌법재판소의 규범통제에 의존해왔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에 의한 통제는 최대한의 통제가 아니라 최소한의 통제만을 의미할 뿐이다. 합리적이고 적합한 형사입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형사입법의 사후단계가 아니라 사전단계에서 학문과 실무의 공동협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과학적으로 자문된 형사정책이 이루어져야 한다. 입법과정에서 형법학의 전문적인 자문이 흠결된 경우에는 형사정책과 형법도그마틱의 영역에서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입법자의 형사정책적 목표, 특히 보호되어야 할 법익이 입법절차에서 비전문적이고 형법학의 관여 없이 강조되고 해명되면 될수록, 형법전의 내용이 이러한 목표에 맞추게 되면 될수록, 입법자의 목표가 벗어나 버릴 위험이 더욱 더 구체화되고 형법적용은 독자적인 길로 갈 위험이 더 커지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간헐적이고 형식적으로 이루어졌던 형법학자와 전문가들 및 입법담당자들간의 공동협력은 상설적인 기구로서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상설적 자문기구를 통하여 지금까지 법치국가적 관점에서 문제 있다고 여겨져 왔던 형사법규범에 대한 지속적이고 발전적인 개혁이 가능하게 된다. 이러한 필요성은 특히 권위주의시대를 탈피하여 인간존엄성존중을 보다 강조하는 현재의 우리 사회의 요구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V. 결 론
민주주의가 발달한 현대국가에서 입법자의 과제는 자신에게 주어진 입법권을 전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상호의존과 공존을 관리하는 것이라고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감내하기 힘든 형벌로 무장하고 있는 형법을 입법함에 있어 입법자는 자신의 입법구상을 규율의 편의에 맞추어야 할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는 개인의 인격발현을 고려하면서 형법투입의 여부를 고려해야 한다. 여기서 특정한 사안에 관한 사회구성원들의 지배적인 의식이 무엇인지가 입법자의 우선적인 고려대상이다. 그러한 고려 없이 규율의 효율성만을 앞세운 경우에는 궁극적으로 국민의 형법에 대한 신뢰를 가져올 수 없다. 그러나 입법자는 결단을 중시하는 정치인이기 때문에 국민의 규범의식과 전문적인 형법체계를 경시할 위험이 크다. 바로 여기에 형법학자나 전문가들이 입법의 사전단계나 입법단계에서 입법자와 대화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산발적으로 행해졌던 형법학의 과학적 정책자문기능은 제도적으로 상설화하는 방향으로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