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요약 1
제1장 서 론 19
제1절 헌법적 서열의 무죄추정원칙 19
제2절 무죄추정원칙에 관한 논의의 현재 19
제3절 연구의 목적, 서술과정 21
제2장 헌법 제27조 제4항의 의미와 내용 23
제1절 무죄추정원칙의 의의 23
1. 무죄추정의 법적 근거 23
2. 무죄추정의 개념 24
3. 무죄추정원칙의 법적 성격 26
제2절 무죄추정의 적용범위 27
1. 형사절차 전과정 27
2. 유죄판결의 확정 28
3. 타 법 영역에의 적용가능성 29
제3절 무죄추정원칙의 규범적 내용 30
1. 증거법상 무죄추정 30
가. 입증책임의 소재 31
나.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32
다. 법률상 추정의 금지 34
2. 구속과 무죄추정의 관계 36
가. 학설의 입장 36
나. 판례의 입장 37
다. 미결구금에 대한 무죄추정원칙의 적용 38
3. 불이익처우의 금지 40
가. 예단의 배제 40
나. 부당한 처우의 금지 41
다. 부당한 처우금지와 무죄추정과의 관계 41
제3장 무죄추정원칙에 관한 비교법적 검토 43
제1절 영 국 44
1. 무죄추정원칙에 대한 이해 44
가. 법적 근거 44
나. 무죄추정원칙에 대한 이해 45
다. 재판전 절차와 무죄추정원칙간의 관계 45
2. 증거법상 무죄추정원칙: Woolmington 사건 46
가. Woolmington 사건 이전의 입증책임구조 46
나. Woolmington 사건의 개요 47
다. 영국 최고법원의 판결 48
3. Woolmington 법칙의 예외 49
가. 설득책임과 주장책임 50
나. 정신이상과 기타 항변 51
다. 법률상 추정규정의 허용 52
제2절 미 국 53
1. 법적 근거 54
2. 재판단계에서 무죄추정원칙 56
가. 입증책임 및 입증의 정도 57
나. 법률상 추정의 허용성 57
다. 사실상 추정의 허용성 58
3. 재판전 단계에서 무죄추정원칙 61
가. 초기 판례의 경향 61
나. 연방대법원의 Bell v. Wolfish 사건에 대한 판단 63
다. 예방구속에 대한 무죄추정원칙의 적용배제 65
제3절 독 일 66
1. 무죄추정원칙에 대한 일반적 이해 67
가. 법적 근거 67
나. 무죄추정원칙의 적용범위 68
다. 무죄추정원칙의 이해 69
2. 법원의 재판단계에서 무죄추정원칙의 효력 71
가. 입증책임규칙 71
나. 무죄추정원칙과 in dubio pro reo의 관계 71
다. 법률상의 추정의 금지 73
3. 수사절차상 강제처분과 무죄추정원칙의 관계 74
가. 논의의 배경 74
나. 수사절차와 무죄추정원칙에 관한 이해 76
다. 구속과 무죄추정에 관한 학설과 판례의 태도 76
제4절 일 본 79
1. 무죄추정원칙에 대한 일반적 이해 79
2. 무죄추정원칙의 법적 근거 80
3. 재판단계에서 무죄추정원칙 81
가. 무죄추정원칙과 in dubio pro reo원칙의 구별 81
나. 증명과 무죄추정원칙 83
다. 법률상 추정과 입증책임의 전환 85
4. 수사절차상 강제처분과 무죄추정의 관계 89
가. 句留와 형의 집행확보의 목적 91
나. 句留와 재범방지의 목적 92
제4장 무죄추정원칙의 규범적 내용에 관한 재검토 94
제1절 증거법상 무죄추정원칙 94
1. in dubio pro reo와 책임주의 94
2. 무죄추정원칙과 in dubio pro reo의 관계 96
3. in dubio pro reo의 효과 96
제2절 무죄추정원칙의 금지대상으로서 불이익처분의 의미와 내용 97
1. 문제제기 98
2. 견해의 대립 99
3. 검 토 101
제3절 수사상 강제처분과 무죄추정원칙 103
1. 불구속수사의 직접적 근거로서 무죄추정원칙? 104
2. 구속의 불이익처분에의 포함 여부 105
3. 구속의 적법성 판단기준의 결여 106
4. 비교법적 검토 107
5. 인신구속에서 무죄추정원칙의 의미 107
제5장 결 론 110
참고문헌 113
독문요약 122
제1장 서 론
우리나라 현행 헌법 제27조 제4항은,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 된다”고 규정하여 무죄추정원칙의 헌법적 지위를 명시하고 있으며, 이것은 형사소송법 제275조의2에서 다시금 확인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가 1990년 4월 10일자로 가입했고 동년 7월 10일자로 발효된 UN인권규약 제14조 제2항에도 무죄추정을 피고인의 기본적 권리로 명시하고 있다. 헌법 제27조 제4항의 규범내용에 관하여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무죄추정원칙의 법적 효력을 인정하고 있으며 판례도 무죄추정원칙 직접적인 재판규범으로 원용하고 있다.
역사적 발전과정이나 헌법 제27조 제4항의 문언을 고려해 볼 때, 무죄추정원칙은 증거법에서 그 본래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래서 학설과 판례에서는 의문의 여지없이 범죄사실의 입증책임은 기소자인 검사에게 있고,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범죄혐의가 입증되지 않은 경우에는 ‘의심스러울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 pro reo)의 원칙에 따라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여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무죄추정원칙이 증거법 이외의 영역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 이를 긍정한다면 그 구체적인 근거는 무엇인지에 관하여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의 법질서에서도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학계와 판례는 무죄추정원칙의 적용범위와 관련하여 헌법 제27조 제4항을 ‘형사피의자’에게 까지 확대하여 무죄추정원칙을 강제처분의 규제원리로서 파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죄추정원칙으로부터 불구속수사원칙이 귀결된다고 이해하고 있다. 그렇지만 수사절차와 무죄추정원칙이 어떠한 관계에 있는 것인지, 특히 강제처분에 무죄추정원칙이 적용될 수 있는 지에 관해서는 그 실질적인 근거가 제시되지 않고 있다. 무죄추정원칙으로부터 불구속수사가 원칙으로 되고, 구속수사는 예외로 남아야 한다는 당위성만 도출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나 외국에서나 무죄추정원칙에 관한 논의는 추상적이고 원론적이며, 형사소추의 일상에서 실용적이고 시민에 대하여 분명한 지침을 제공해 주는 기능을 결하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에 무죄추정원칙이 명시적으로 도입된 지 25년이 되는 시점에서 이제는 그 실질적 내용과 개별적인 쟁점에 관하여 의미 있는 논의를 진행해 보아야 한다.
제2장 한국헌법상 무죄추정원칙의 의미와 내용
제1절 무죄추정원칙의 개념과 법적 성질
헌법 제27조 제4항에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는 무죄추정원칙의 개념내용에 관하여 헌법재판소는 그 출범 이후부터 지금까지 줄곧 “공소의 제기가 있는 피고인이라도 유죄의 확정판결이 있기까지는 원칙적으로 죄가 없는 자에 준하여 취급하여야 하고, 불이익을 입혀서는 안 된다”고 판시해 오면서, 무죄추정의 제도적 표현으로서 공판절차의 입증단계에서 입증책임을 검사에게 부담시키는 제도, 보석 및 구속적부심 등 인신구속의 제한을 위한 제도, 피의자 및 피고인에 대한 부당한 대우 금지 등을 설시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판례를 보충하는 학설에서는,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금지되는 불이익처분이란, 외형적으로 형벌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처분뿐만 아니라, 통상 유죄판결에 수반되는 사회적 비난이나 사회적 차별의 불이익까지도 포함하지만, 당해 불이익처분이 유죄판결에 특별히 내재하고 있는 사회적․윤리적 비난을 수반하고 있어야 한다고 이해하기도 한다.
헌법 제27조 제4항에 규정된 무죄추정원칙의 법적 성격에 관하여, 무죄추정을 근거로 개인이 직접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무죄추정원칙이 헌법상의 구체적 기본권으로 이해하는 입장과 무죄추정의 주관적 성격보다는 형사절차를 지배하는 지도적 원칙으로 이해하는 입장으로 나뉘어 있다. 한편, 무죄추정의 원칙이 문제되는 경우에는 대개 다른 기본권의 침해가 아울러 문제되므로 무죄추정원칙의 법적 성격을 규명하는 실제적인 의의는 크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27조 제4항의 규범내용을 기본권으로 이해하면서도, 그 용어는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으며 무죄추정권과 무죄추정원칙을 혼용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제2절 무죄추정의 적용범위
우리나라의 학설과 판례는 일반적으로 헌법 제27조 제4항에 형사피고인뿐만 아니라 형사피의자도 포함된다고 이해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학설과 판례가 법률에 반하는 해석(contra legem)을 통하여 형사피의자까지도 헌법 제27조 제4항의 효력범위 속으로 포함시키는 이유는, “고도의 범죄혐의가 인정됨을 이유로 공소가 제기되어 유죄판결을 받을 개연성이 더욱 높아진 형사피고인에게 조차 무죄의 추정이 인정된다면 아직 공소제기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정도로 범죄혐의가 높지 않은 형사피의자 및 그 전단계의 단순한 혐의자들에 대해서는 더욱 더 강한 무죄추정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논리적 필연성 때문이다. 다만, 일부 소수견해는, 무죄추정이 피고인과 피의자에게 모두 적용되지만, 형사절차상 부당한 처우의 금지와 불구속수사의 원칙은 무죄추정과 외관상 연관가능성이 있을 뿐이지 실제로는 그 관계가 희박하다고 한다.
무죄추정원칙은 유죄의 확정판결 시까지만 효력을 가진다. 사실심에서 유죄판결이 선고되었다 하더라도 확정되지 않고 있는 한 아직 무죄로 추정 받게 된다. 다만 재심청구사건의 경우에는, 유죄판결이 확정된 것이 명백한 이상 재심청구가 있다고 피고인에게 무죄가 추정될 수는 없다는 입장과 재심청구인은 기본적으로 무죄추정권을 향유하지 못하지만, 일단 재심이 개시되면 재심청구사건에 대한 심판에 있어서도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의 원칙은 그대로 적용된다고 이해하는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제3절 무죄추정원칙의 내용
무죄추정원칙의 규범적 내용은 일차적으로 증거법에서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죄추정원칙으로부터 입증책임의 분배로 인하여 검사가 유죄인정에 필요한 증거를 제출할 의무가 있다는 점,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지 못한 경우에는 ‘의심스러울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원칙에 따라서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는 점, 법률상 추정규정을 금지한다는 점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우리나라에서 무죄추정원칙은 수사절차에서 구속의 요건과 구속기간 및 구속의 강도에 관해서도 적용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통설과 판례는 무죄추정이 인신구속의 제한원리가 되며, 불구속수사의 원칙도 무죄추정원칙에서 도출하고 있다. 그러나 무죄추정원칙은 유죄확정 이전에 유죄확정자로서의 처우를 금하는 것이지 유죄확정 전에 전혀 불이익을 줄 수 없다는 것은 아니라는 관점에서 불구속수사와 무죄추정원칙간에는 관계가 없다는 소수설도 있다. 또한 우리나라 학설과 판례는 무죄추정원칙이 미결구금에도 적용된다는 점에 일치하고 있다. 무죄추정권에 비추어 볼 때 구속피의자․피고인은 가능한 한 사회 일반인과 동일한 처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무죄추정원칙을 해석함에 있어서 예단의 배제나 기타 일체의 부당한 처우의 금지를 무죄추정원칙의 내용에 포함시키고 있다. 다만, 부당한 처우의 금지는 적정절차 원칙의 내용으로서, 유죄확정의 전후를 불문하고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유죄확정 이전에 유죄확정 후에 가능한 처우를 금지하는 무죄추정원칙과 필연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제3장 무죄추정원칙에 관한 비교법적 검토
제1절 영 국
영국에서는 무죄추정원칙은 입증책임전환의 또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고 이해하고 있으며 판례는 무죄추정 개념 자체를 잘 사용하지도 않는다. 영국 최고법원은 1935년 Woolmingtion 사건에서 정신이상으로 인한 책임무능력과 법률상 추정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기소인 측이 모든 입증책임을 부담한다고 판시한 이후로 지금까지 이 원칙은 유지되고 있다. 또한 유죄의 인정에 필요한 입증의 정도는 ‘합리적 의심이 없는 증명’이어야 한다. 그러나 배심제를 채택하는 영국에서는 사실인정을 둘러싼 증거법칙이 분화되어 있는 데, 예컨대 설득책임과 주장책임의 구분을 들 수 있다. 설득책임(persuasive burden)은 사실의 존부가 불명인 경우의 위험부담을 의미하며, 주장책임(evidential burden)은 어느 특정한 쟁점에 관하여 증거를 제출하여야 할 부담을 말한다. 영국에서 무죄추정원칙과 수사절차상 강제처분을 결부지우는 견해는 학설에서 조차도 매우 드문 현상이며 형사절차의 목적을 위하여 구속은 당연히 인정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제2절 미 국
미국의 헌법에는 무죄추정이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지만, 연방대법원은 무죄추정원칙을 헌법 개정 제5조 및 제14조의 적법절차조항을 구체화하는 절차의 공정성에 대한 권리의 본질적 내용이라고 판시함으로써 불문의 헌법원리로 인정되고 있다. 무죄추정원칙에 관한 미국 학계의 통설은 무죄추정이 입증책임의 분배와 입증의 정도에 국한되어 적용된다고 이해하고 있다. 입증책임의 분배와 관련하여 연방대법원은 1970년 In re Winship 사건에서 형법적 비난의 근거가 되는 모든 요소를 기소하는 측이 입증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입증의 정도에 관해서는 합리적 의심의 기준(beyond resonable-standards)이 적용된다. 법률상 추정규정에 대하여 연방대법원은 헌법이 금지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이러한 추정이 아무런 한계 없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하고 있다. 배심제를 취하고 있는 미국의 재판절차에서 사실상 추정은 대부분 허용되는 추론과 관련하여 현재 미국에서 인정되는 유형은 대부분 허용되는 추론(Permissive inference)과 관련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예컨대 마리화나나 코카인을 소지한 사실로 부터 그 마리화나나 코카인이 불법적으로 수입된 것으로 추정하는 것은 근거없는 것이다. 따라서 형사사건을 심리하는 공판법관은 배심에 대하여 피고인에게 불리한 추정사실을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고 설시(instruction)할 수는 없다.
미국에서 무죄추정원칙이 자기부죄금지와 같이 피의자의 재판전 단계의 권리목록에 포함되는지에 관하여 학설과 판례에서 많은 논쟁이 있었다. 연방대법원은 1979년 Bell v. Wolfish 사건에서 무죄추정이 단지 재판절차에서 형사피고인의 입증책임에 관련을 가질 뿐, 재판전 단계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확하게 판시하였다. 나아가 재범의 위험성을 구속사유로 하고, 보석권도 배제하며 구속기간의 무제한을 내용으로 하는 1984년의 연방보석개정법 제3142조 제e, f항의 ‘예방구속’의 합헌성 여부에 대하여 연방대법원은 1987년 United State v. Salerno 사건에서 동 조항이 적법절차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았으며 예방구속은 형벌이 아니라 일종의 경찰법적 조치에 해당한다는 합헌결정을 통하여 하급심판결을 기각하였다.
제3절 독 일
독일은 성문법을 기본으로 하는 대륙법계임에도 불구하고 기본법에 무죄추정원칙에 관한 명문의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유럽인권협약 제6조 제2항과 UN국제인권규약 제14조 제2항의 무죄추정원칙이 독일연방에서 효력을 발하고 있지만, 이 규범들은 헌법적 차원의 서열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독일의 학계와 판례는 무죄추정원칙이 헌법의 구성요소라는 점에 합의를 보고 있다. 특히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일관된 판례를 통하여 무죄추정이 법치국가원리의 구체적 표현이라고 판시하고 있다.
무죄추정의 사항적 적용범위와 관련하여 독일의 학설은 무죄추정이 형법에만 적용된다고 이해하는 것이 통설적 견해다. 이에 반해 독일의 판례는 질서위반법 위반사건, 노동법 위반사건(혐의에 기초한 해고) 및 보험법의 영역에서 입증책임 경감과 관련하여 무죄추정원칙을 원용하고 있다. 또한 통설과 판례는 무죄추정원칙이 사인인 언론매체도 구속하지만, 그것은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인 제3자효(mittelbare Drittwirkung)만 인정된다고 이해하고 있다.
법원의 재판단계에서 무죄추정원칙은 형사소송의 입증책임으로 이해되며, in dubio pro reo 원칙 및 혐의형의 금지와 관련을 가지고 있다. 다만, 과거와는 달리 무죄추정원칙과 in dubio pro reo 원칙과의 관계를 이론적으로 정립하고자 하는 노력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법률상 추정과 관련하여 독일 학설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법률상 피고인의 책임을 추정하거나 고의의 존재를 추정하는 규정들도 무죄추정원칙으로 인하여 허용되지 않는다고 이해하고 있다. 이에 반해,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법률상 추정규정이 원칙적으로는 형사실체법상 책임주의에 반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서도, 모든 법률상의 추정규정이 법치국가에 반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하고 있다.
수사절차와 무죄추정원칙간의 관계에 대하여, 연방헌법재판소는 무죄추정원칙이 수사절차에 대하여 적용된다는 점을 밝히면서도 형사소추기관이 공판절차 종료 이전에 피의자의 가벌적 행위에 대한 혐의의 정도를 판단하고 이러한 혐의의 정도에 따라서 강제처분을 행사하는 것은 무죄추정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다만 수사절차상 강제처분 행사는 항상 비례원칙에 따라서 그 한계를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독일에서는 구속과 무죄추정원칙의 관계가 적지 않게 논의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구속기간의 절대적이 상한이 법정되어 있지 않아서 무죄추정원칙을 이론적 기초로 삼아 구속기간의 상한을 설정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무죄추정원칙이 정당한 구속의 요건이 존재하는 사안에서 구속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학설에서는 구속과 무죄추정과 조화를 이룬다는 입장에서 출발하면서도, 수사상 강제처분의 내용(예컨대 구속기간)이 형벌과 동일하거나 유죄를 미리 예견하는 제재로 나타나는 경우에만 무죄추정원칙에 위배된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 강제처분의 형벌동일성을 판단하기 위한 구체적 기준(기본권제한의 강도, 기간 등)에 대해서는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다.
제4절 일 본
일본의 현행 헌법 및 형사소송법에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명문으로 선언하고 있는 조문은 없다. 그렇지만 무죄추정원칙의 적용영역을 입증책임과의 관련에서 파악하여 증거법의 영역에 한정시켜 이해하는 입장이 다수설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는 일본헌법 제31조를 적정절차조항으로 이해하여 이 조항에 무죄추정의 원칙도 포함된다고 파악하면서, ‘피고사건에 대하여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는 무죄판결을 선고하도록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336조는 헌법 제31조를 구체화한 조항으로 이해하는 입장이 다수설이다.
이상과 같은 법적 근거에 따라 형사절차에서 피의자 내지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추정’의 이익을 부여하는 것은 일본 형사사법의 대원칙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죄책이 적법한 절차를 통하여 입증되어 유죄 판결이 선고될 때까지는 피의자 및 피고인은 가능한 죄가 없는 사람으로서 취급되어야 한다. 물론 피의자들 중에는 죄가 있는 사람이 다수 포함되어 있고 나아가 피고인이 되면 통계상 유죄로 선고되는 비율이 극히 높은 점에서 볼 때 오히려 유죄를 추정하는 것이 진실이라 할 수도 있다. 이점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은 수사절차에서 피의자를 일반시민과 동등하게 취급하여야 한다는 원칙이 아니라 실체적 진실을 위하여 피의자의 자유를 제한하는 경우에도 그 제한은 가능한 필요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는 법리로 이해되고 있다.
한편 재판절차와 관련하여 일본의 다수설의 입장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증거법상의 원칙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입증책임의 분배(전환)문제,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라는 원칙과의 관계에서 증명 및 혐의형금지의 문제 그리고 입증책임의 전환과 관련된 법률상 추정의 문제로 집약된다. 먼저 무죄추정이라는 용어는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지만, 이에 대하여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원칙은 무죄추정원칙보다는 한정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즉 일본에서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원칙은 사실의 존부가 명백하지 않은 때에 어떠한 재판(무죄판결 및 유죄판결)을 하여야 하는 지를 지시하는 법칙으로 이해하고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법원의 심리절차에 있어서 무죄추정이란 증명에 관한 원칙, 특히 입증책임의 소재를 지시하는 규범으로 이해되고 있다. 즉 ‘합리적인 의심을 품을 여지가 없을 정도(beyond a reasonable doubt)’로 유죄의 사실을 검사가 증명할 때 비로소 피고인을 유죄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형사소송에서 증명에 관한 무죄추정원칙은 형사재판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것이지만, 일본에서는 이 원칙을 일절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엄격한 원칙으로는 이해하고 있지 않다. 대부분의 견해는 일정범위 내에서 무죄추정원칙의 예외를 허용하고 있다. 즉 법률상 추정을 통한 입증책임의 분배(전환)는 무죄추정원칙의 범위 속에서 증거제출책임으로 한정하여 허용하고 있다.
제4장 무죄추정원칙의 규범적 내용에 대한 재검토
지금까지 논의된 무죄추정원칙의 다양한 관점들은 각각 무죄추정원칙의 본질적 측면을 지적해 주고 있지만, 그럼에도 실질적 내용을 충분하게 구체화시키지 못하고 있으며 형사절차상의 타 원칙들과 유사한 측면도 있다. 이 점에서 우리나라 헌법 제27조 제4항과 형사소송법 제275조의2에 명시되어 있는 무죄추정원칙의 규범적 내용을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제1절 증거법상 무죄추정원칙
무죄추정원칙은 일차적이고 직접적인 적용영역은 증거법에서 나타난다. 무죄추정원칙은 입증책임의 소재를 정하는 규칙임과 동시에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의 유죄의 확신이라는 입증의 정도를 요구하는 소송법상의 법원리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이 두 가지 내용이 무죄추정원칙에 속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거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문제는 ‘의심스러울 경우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와 무죄추정원칙과의 관련성이다.
1. in dubio pro reo와 책임주의
‘의심스러울 경우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의 법리는 가벌성에 관한 실체법적 요건의 존재가 입증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요건의 부존재도 입증되지 아니한 경우에 법원으로 하여금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하도록 하는 판단규칙을 의미한다. ‘의심스러울 경우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의 법리는 실체형법의 책임주의에서 도출된다. 여기서 피고인의 책임(유죄)은 소송과 무관하게 단지 존재론적으로 발견되거나 묘사되는 것이 아니라 형사절차를 통하여 재구성되고 확정된다. 이를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예단이 개입되지 않은 진실발견을 보장하기 위한 투명한 입증의 절차, 즉 공정한 재판절차가 요구된다. 그리고 이러한 공정한 재판절차 속에서 피고인의 범죄혐의에 대하여 법관이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의 확신에 이르지 못한 경우에는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 이 점에서 의심스러울 경우에 피고인의 이익으로의 법리는 법관의 범죄에 대한 혐의만으로 유죄로 판결하는 혐의형의 금지를 본질적 내용으로 하며 실체법상의 책임주의의 절차적 이면을 형성한다.
2. 무죄추정원칙과 in dubio pro reo의 관계
in dubio pro reo에 관한 우리나라 통설은 이 법리를 무죄추정원칙과 거의 동의어로 이해하고 있지만, 이 두 가지 원칙은 그 본질이나 적용범위와 관련하여 무시할 수 없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선 본질의 측면에서 보면, 무죄추정원칙은 소송법상의 제도임에 반하여 in dubio pro reo의 법리는 법관의 판단법칙으로서 실체법상의 책임주의에 속하는 것이다. 적용범위와 관련해서는, 무죄추정원칙이 법관의 심증형성시까지만 의미를 가지는데 반해, in dubio pro reo의 법리는 심증형성이후에 그것도 입증불명(non liquet)이 명확한 상태에서만 효력을 발한다.
3. in dubio pro reo의 효과
우리나라 학설에서는 일반적으로 in dubio pro reo 법리를 ‘무죄’로 이해하고 있다. 그렇지만 in dubio pro reo 법리는 입증불명의 상황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법효과’(pro reo)가 발생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항상 무죄판결로 이어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무죄판결이 선고되어야 하는 사례로는 법원이 피고사건에 관하여 입증불명의 상황에 봉착한 경우에 공소가 제기된 사실관계와 다른 사실관계(예컨대 보다 경미한 사실관계) 조차도 인정할 수 없어서 피고인이 불가벌이라는 결론에 이른 경우이다. 피고사건에 관하여 심리한 결과 다른 사안으로 변경될 수 있는 경우에는 관련되는 형벌법규나 범죄유형간의 서열관계가 존재하는지 검토해 보아야 하고, 이러한 서열관계가 확정된 경우에는 그 중에서 경한 구성요건으로 처벌해야 한다.
제2절 무죄추정의 금지대상으로서 불이익처분
헌법재판소 판례와 학설에 의하면, 유죄의 확정판결이 있기까지는 죄 없는 자에 준하여 취급하여야 하고, 불이익을 입혀서는 안된다. 여기서 불이익처분은 유죄예단의 금지로 이해된다. 그런데 확정판결 이전의 유죄예단, 즉 ‘죄 없는 자에 준한 취급’과 ‘불이익처분금지’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불이익처분을 형식적으로 검토하게 되면, 과태료, 과징금, 범칙금 등과 같은 행정상 제재나 구속․압수․수색과 같은 수사상 강제처분, 감치 등의 부과도 금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독일 학설에서는 불이익처분의 인정기준에 관하여 사실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있다. 이러한 입장을 위하는 견해는, 형사절차에서 피고인의 무죄추정은 단지 정형화된 형사절차에서 확정적인 유죄판결에 의해서만 번복이 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유죄가 확정되기 전에는 형벌과 형벌에 준하는 제재뿐만 아니라 사실상 형벌과 유사한 효과를 가져오는 일체의 불이익처분도 금지된다고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방식은 불이익처분의 범위를 불명확하게 만들어 버리는 난점이 있다. 이러한 이해방식에 따를 경우 예컨대 수사절차나 재판절차에서 피의자 또는 피고인에 대한 구속이나 압수․수색과 같은 강제처분은 적어도 관련자에게 해악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결국 무죄추정원칙에 정면으로 반한다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불이익처분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확정함에 있어서는 현재 우리사회에 위험을 예방하고 절차를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들과의 관련성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무죄추정원칙이 금지하는 불이익처분은 막연하게 형벌과 유사한 ‘효과’를 가져오는 처분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무죄추정원칙에서 금지하는 불이익처분이란, 유죄의 확정판결 이전에 형벌 또는 형벌에 준하는 처분으로서 사회윤리적 반가치판단이 담겨져 있는 처분을 말한다.
제3절 수사상 강제처분과 무죄추정원칙
우리나라의 통설과 판례는 불구속수사원칙을 무죄추정에서 직접적으로 도출하면서도 양자의 실체적 관련성에 관해서는 분명한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으며, 어떠한 기준에 기초하여 무죄추정원칙이 구속을 제한하는 규칙으로 기능하는지 불분명하다.
1. 불구속수사의 일차적 근거로서 무죄추정원칙?
그러나 통설과 판례가 주장하는 것처럼, 피의자에 대한 수사와 관련하여 불구속원칙이 무죄추정원칙의 당연한 귀결인지 의문이 제기된다. 구속은 피의자나 피고인에 대한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형사절차에서 출석을 보장하고 증거인멸을 통한 수사와 심리의 방해를 제거하며, 형벌의 집행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이다. 여기서 구속이 허용되는지의 여부는 형사소송법이 규정하고 있는 구속의 요건인 범행의 상당한 이유와 주거부정, 증거인멸, 도주위험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구속사유의 요건에 해당하는지의 여부에 달려있다. 따라서 형사절차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구속이 행해지는 한, 이를 두고 유죄의 확정판결 이전에 금지하는 처분이나 적정절차에서 금지하는 부당한 처벌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형사소송법상의 구속의 요건이 존재하는 경우에 수사기관은 이를 관철하는 것이 법적용자와 법집행자로서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법치국가원리의 또 다른 요소인 법률의 정당한 집행이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물론, 구속은 형사절차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임에는 틀림없지만, 개인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하는 강제처분이라는 점에서 구속법의 적용에 일정한 제한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이를 위하여 현행 형사소송법 제199조 제1항은 구속을 포함한 강제처분은 필요한 최소한도의 범위 안에서만 행사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 점에서 비례원칙이 구속법을 지배하는 원리가 되는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무죄추정원칙이 구속의 당부를 판단하거나 불구속의 직접적인 근거가 된다고 보기 힘들다.
2. 구속의 불이익처분에의 포함 여부
무죄추정원칙의 본질적 내용인 ‘불이익처분의 금지’는 형사소송절차에 따라 유죄의 판결이 확정되기 전에는 형벌이나 형벌과 유사한 불이익처분을 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해 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형사소송법학계에서는 구속을 형사절차 확보의 수단으로 이해하고 있지, 형벌과 유사한 불이익처분으로 이해하지 않고 있다. 형사절차상 특정한 처분이 형벌과 유사한 효과를 가지는지의 여부는 그 처분이 범죄혐의의 규명이라는 절차상의 합법적인 목적에 이바지 하는 것인지에 달려있게 된다. 여기서 구속이 정당한 형사절차의 확보수단으로서 기능하는 한 이를 불이익처분으로 봐서는 안 된다. 만약 수사상 강제처분이 형벌과 유사하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처분이라고 인정한다면 구속제도는 언제나 무죄추정원칙에 위반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3. 구속의 적법성 판단기준의 결여
무죄추정원칙이 구속이나 압수수색의 허용성에 어떠한 판단기준을 제공해 주는 지 의문이 제기된다. 특정한 강제처분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그 강제처분의 위법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구속이나 압수수색의 위법성을 문제 삼는 경우에도 납득할 수 있는 개별화된 판단기준을 가지고 당해 강제처분의 위법성을 검토해 보아야 한다. 그러나 무죄추정원칙은 강제처분의 허용성이나 강도(强度)를 판단하는 기준을 제공해 주지 못한다. 또한 구속이 위법한지의 여부는 개별 사건마다 그 기초되는 사안을 달리하기 때문에 위법성 판단의 기준과 준거점도 개별사건마다 달라진다. 그런데 무죄추정원칙은 항상 동일한 크기로 존재하기 때문에 구속의 허용성이나 강도를 판단하는 데 아무런 판단기준을 제공해 주지 않는다. 유죄의 확정판결 이전에 형벌, 형벌과 유사하거나 사회적으로 차별하는 불이익처분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는 무죄추정의 내용이 구속의 위법성 판단에 어느 정도의 판단기준을 제공해 줄지 의문이 제기된다.
4. 비교법적 검토
비교법적으로 고찰해볼 경우에도 구속에 무죄추정원칙이 적용된다는 우리나라의 학설과 판례는 설득력이 약하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미 1979년 Bell v. Wolfish 사건에서 무죄추정원칙이 재판전 단계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바 있다. 특히 미국과 독일에서는 재범의 위험성을 구속사유로 하는 예방구속도 허용하고 있으며, 연방대법원은 1987년 United State v. Salerno 사건에서 예방구속이 적법절차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시하였다. 독일의 학설과 판례는 구속과 무죄추정원칙은 상호 조화관계에 있으며, 다수설은 예방구속에 관한 형사소송법 제112a조가 무죄추정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이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비해 수사상 기본권제한의 가능성을 더 느슨하게 열어두고 있는 미국과 독일의 구속관련 입법과 판례 및 학설의 태도는, 구속과 무죄추정원칙간의 관계에 대한 우리나라의 학설과 판례에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5. 인신구속에서 무죄추정원칙의 의미
강제수사는 기본권침해나 제한과 직접적으로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이 통제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나라 법질서는 이를 위해 적법절차원칙이나 비례원칙을 명시적으로 규정해 두고 있다. 나아가 피의자의 진술거부권, 변호인조력권 등 절차상의 권리가 보장되고 있다. 따라서 당해 수사절차에서 피의자는 수사기관의 구속으로 인하여 절차의 객체로 되어 있지만, 헌법이나 형사소송법이 인정하고 있는 절차상의 기본권을 향유할 수 있다. 여기서 구속과 무죄추정원칙간의 이율배반적인 관계는, 수사기관이 구체적 범죄혐의가 인정되는 피의자에 대하여 구속을 하였지만, 구속된 피의자는 절차상의 기본권에 기초하여 자신의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방식으로 해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의 맥락에서 무죄추정원칙은 어디에서도 직접적이고 독자적인 기능을 찾아보기 힘들다. 결론적으로 무죄추정원칙은 불구속수사원칙의 일차적이고 직접적인 근거가 되지 못하며 수사기관 종사자로 하여금 인신구속시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한다는 훈시적 의미를 뛰어넘을 수 없다. 인신구속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구속법을 지배하는 비례원칙을 적용하여 피의자의 기본권영역을 보다 덜 침해하면서도 형사절차를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보석제도의 활성화나 구속집행유예제도 도입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제5장 결 론
역사적으로 보면, 무죄추정원칙은 유죄판결을 위해서는 2명의 증인이나 피고인의 자백을 요구했던 규문주의하의 증거법칙에 따라 범죄사실이 증명될 수 없었을 경우에 법관이 무죄선고를 피하기 위하여 보다 경한 형벌(소위 특별형: poena extraordinaria)을 선고하는 것이 가능했던 규문소송체계에 대한 투쟁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규문시대에서 해방된 오늘날 대부분의 법질서에서는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의 증명에 기초한 경우에 한하여 유죄의 선고가 가능하며, 이러한 입증의 정도에 이르지 아니한 채 피고인의 혐의를 전제로 한 형벌이나 불이익처분을 부과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정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유죄’의 확정은 형사절차를 통하여 재구성되고 확정되며, 이를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예단이 개입되지 않은 진실발견을 보장하기 위한 투명한 입증의 절차, 즉 공정한 재판절차가 요구된다. 그리고 이러한 공정한 재판절차 속에서 피고인의 범죄혐의에 대하여 법관이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의 확신에 이르지 못한 경우에는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형사소송법상 무죄추정원칙이란, 미국의 연방대법원이 명백하게 판시한 바와 같이, 공소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의 소재와 입증의 정도를 정하는 법칙으로서 재판단계에서 나타난 증거에 의해서만 피고인의 유․무죄를 판단해야 한다는 증거법상의 원칙이다. 따라서 재판절차 이전단계에서 수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인신구속은 무죄추정원칙의 효력범위에 포함되지도 않는다고 이해하는 것이 헌법 제12조와 제27조 제4항에 대한 체계적이고 충실한 해석이다.
무죄추정원칙을 불구속수사의 규제원리로 받아들이는 우리나라 통설과 판례의 견해는 수사실무에서 나타나는 구속사례를 가급적 줄여보고자 하는 이론적 차원의 시도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여지도 있다. 그렇지만, 무죄추정원칙을 인신구속의 제한원리로 이해하는 경우에는 수사의 효율성을 현저하게 저해하고 이로써 형사절차의 정당한 관철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릴 위험이 있다. 이 점에서 불구속수사와 구속수사를 원칙과 예외의 관계로 양극화 시키고, 불구속수사원칙이 무죄추정원칙에서 연원하는 일차적이고 직접적인 귀결이라는 통설과 판례는 무죄추정원칙의 본질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며, 오히려 ‘형사피고인’만 주체로 명시하고 있는 우리 헌법 제27조 제4항의 고유한 윤곽마저 흐리게 할 위험이 있다. 무죄추정원칙이 인신구속의 제한원리가 된다는 통설과 판례의 주장내용은 수사기관에 대하여 ‘신중한 수사에 대한 요청’이라는 훈시적인 성격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