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요약 9
제1장 서 론 25
제2장 국제형법의 개념과 해석방법 29
제1절 국제형법의 개념과 발전과정 29
1. 국제형법의 개념 29
2. 국제형법과 구별되는 개념 32
3. 국제형법의 발전과정 33
제2절 국제형법의 법원 36
1. 국제법의 일반적 법원 37
가. 국제조약법 37
나. 국제관습법 39
다. 보편적 법원칙 41
2. 국제형법의 특별한 법원 42
가. 로마규정 제21조 42
나. 로마규정상 법원의 유형 43
다. 로마규정 제21조에 다른 법원의 서열구조 44
제3절 국제형법의 해석 46
1. 국제법의 해석규칙 46
2. 국제형법상 해석의 한계 47
제3장 로마규정상 국제범죄의 가벌성 요건 49
제1절 로마규정상 국제범죄의 체계 49
제2절 범죄의 객관적·주관적 구성요소 51
1. 일반적․객관적 범죄구성요소 51
2. 일반적․주관적 범죄구성요소 52
제3절 형사책임조각사유 57
1. 정당방위 57
2. 긴급피난 59
3. 상관의 명령에 따른 행위 59
4. 착 오 60
5. 책임무능력 61
6. 시 효 62
7. 불문의 형사책임조각사유 62
제4절 정범과 공범 63
1. 서 설 63
2. 정 범 65
3. 공 범 66
제5절 상급자책임 68
1. 서 설 68
2. 상급자책임의 정당성과 범죄체계론상의 지위 69
3. 로마규정 제28조의 상급자책임의 성립요건 72
제6절 미 수 77
제4장 전 망 80
참고문헌 82
독문요약 86
[부록-1] 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전문 88
[부록-2]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 번역문 100
[부록-3]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 원문(영문본) 200
Ⅰ. 서 론
1998년 7월 17일에 로마에서 채택되고 2002년 7월 1일자로 발효된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이하 ‘로마규정’으로 약함)의 탄생으로 국제적 핵심범죄로 간주되는 집단살해죄, 반인도범죄, 전쟁범죄에 대하여 상설의 국제형사재판소가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고, 로마규정에 명시된 국제범죄에 적용될 공통의 귀속기준도 창설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로마규정 제3부는 “형법의 일반원칙”이라는 표제 하에 제22조 내지 제33조에서 상설의 국제형사재판소의 설치에 따른 원칙적․일반적 귀속기준을 명시해두고 있다. 로마규정의 창설로 인하여 이른바 국제법을 통한 “개인”의 형사책임을 “직접적으로” 근거지우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실질적 의미의 국제형법(international criminal law, Völkerstrafrecht)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2002년 11월 13일에 로마규정에 비준하였기 때문에 로마규정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고 있다. 즉, 로마규정에 따라서 국제형사재판소는 집단살해죄(제6조), 반인도범죄(제7조), 전쟁범죄(제8조)에 대하여 직접적인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다. 다만, 로마규정에 따른 국제형사법원의 관할은 국내형사관할권을 보충하는 차원에서 작동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므로 당사국은 국제형사법원의 관할대상범죄를 효과적으로 기소할 수 있는 국내장치를 갖추어야 하고, 이를 위하여 정부는 정부는 로마규정의 국내이행법률로 간주되는 “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을 2006. 12. 29.자로 국회에 제출하였으며, 2007. 11. 23. 동 법률안은 국회에서 의결되었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이 연구는 2007. 11. 23. 국회에서 통과된 “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대한 이해의 증진을 위하여 우리나라 형법학계에서 아직 각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국제형법의 체계와 주요내용을 개관하여 소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Ⅱ. 국제형법의 개념과 해석방법
1. 국제형법의 개념과 발전과정
국제형법(international criminal law, Völkerstrafrecht)이란 국제법상 개인에 대한 형사책임을 근거지우는 일체의 규범을 말한다. 국제형법의 내용과 범위는 오로지 국제법을 통하여 확정된다. 이러한 국제법규범 속에는 일반적으로 형사소송법, 형집행, 법원조직, 형사사법공조 등과 같은 부속자료들도 포함되어 있다. 국제형법의 법적 성격에 관하여, 개인의 행위를 처벌한다는 점에서 보면 국제형법은 형법인 반면, 그 법원이 국제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국제형법은 국제법에 속하는 것이다. 한편, 법원과 규범내용의 관점에서 보면 국제형법은 형식적으로는 국제법이고 실질적으로는 형법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행위의 귀속과 그 행위에 대한 제재를 개별적으로 어떻게 규율할 것인지의 여부는 구조적으로 진정한 의미의 실체형법에 해당하는 것이다.
규범창설의 주체가 ‘국제공동체’라는 관점에서 출발해보면, 국제형법은 협의와 광의로 나누어서 이해할 수 있다. 협의의 국제형법은 그것을 국내법으로 이행할 필요가 없고 상응하는 국내 형법규범의 존재를 불문하고 개인의 가벌성을 “직접적”으로 근거지우는 국제법 규범으로 이해된다. 협의의 국제형법은 로마규정에 명시되어 있고 원인론적으로도 국내법의 전형적인 범죄와 분명하게 구별되는 핵심범죄(core crimes: 집단살해, 반인도적 범죄, 전쟁범죄, 침략범죄)를 포함하고 있다.
한편, 광의의 국제형법에는 협의의 국제형법 이외에 다자간의 조약에 기초하여 당사국에 대하여 특정한 행위의 범죄화와 형사소추에 대한 의무를 부담시키는 국제법 규범도 포함된다. 광의의 국제범죄는 다수의 조약범죄(treaty crimes)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약상의 범죄들을 실질적으로 국제법상의 범죄 내지 국제범죄에 포함시키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있다. 조약범죄는 마약류범죄와 같이 국내법질서에 규정된 일반적인 범죄와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외국의 학설을 보면 진정한 의미에서 국제형법이란 국제법상 개인에 대한 가벌성을 직접적으로 근거지우는 국제법 규범만을 의미한다고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로마규정은 주요 국가들이 배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자간 조약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많은 국가들이 서명하였으며 국내법의 절차에 따라 비준을 마쳤다.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은 국제관습법이나 국제조약법에서 발전된 본질적인 범죄구성요건들만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전체적으로 지금까지의 국제관습법의 결정체로 볼 수 있다. 특히 로마규정상 형법총칙에 관한 규정들을 도입한 것은 바람직한 발전이지만, 그것은 곧 법창조적 행위를 의미한다. 로마규정상의 형법총칙에 상응하는 국제관습법의 규범들은 불안전하며 완결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발전상태의 면에서 보면, 국제형법은 아직 배아단계에 와 있다고 볼 수 있으며, 특히 국내형법의 도그마틱과 비교해보면 아직 발전되지 아니한 원시적인 법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국제형법상 일반적인 귀속규칙, 즉 국제형법총칙의 도그마틱에 관한 문제를 학문적 차원에서 상세하게 논의한 것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993년과 1994년의 2개의 국제임시형사재판소에서 판례가 나오기 시작해서야 비로소 도그마틱적으로 완전한 국제형법에 대한 필요성이 절박하게 다가왔다. 개인에 대한 형사책임의 귀속, 양형 등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규칙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로마규정에서 제22조 내지 제33조에 형법의 일반원칙 내지 형법총칙(Genaral Principles of Criminal Law)을 명시해 둔 것은 국제형법의 발전에 근본적인 획을 그었다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2. 국제형법의 法源
국제형법은 개별 형법적 성격을 지닌 국제법규범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국제형법은 국제법질서에서 승인된 법원에서 생성될 수 있다. 여기서 국제법질서에서 승인된 법원이란 국제사법재판소규정 제38조 제1항 a호 내지 c호에 열거된 국제조약법, 국제관습법 및 보편적 법원칙을 말한다. 국제조약법, 국제관습법 및 보편적 법원칙을 국제법의 일반적 법원이라고도 한다. 이 외에도 국제형법의 특수한 법원과 국제법상 법인식자료가 있다.
국제형법의 특별한 법원에는 매우 다양한 자료들이 포함된다. 이 중에서 로마규정, 범죄구성요소, 절차및증거규칙은 국제형법의 적용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법원이 된다. 이와 관련하여 로마규정 제21조는 국제형사재판소가 적용할 수 있는 법원의 유형과 서열에 관하여 명시하고 있다. 로마규정 제21조는 국제관습법으로 인정된 국제형법의 법원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로마규정 제21조가 국제사법재판소규정 제38조와 동일하게 국제관습법을 완전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즉 국제형법상 일반적인 기준이 되는 규정들을 포함하고 있는지의 여부에 관해서는 논란이 되고 있다.
로마규정 제21조에 명시된 제법원과 앞에서 언급한 국제법의 일반적인 법원론간에는 관련되는 법이 생성된 유형에 따라서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 서열화와 규범의 상세화 면에서 차이가 난다. 다시 말하면, 국제법의 일반적인 법원들 간에는 각각 그 서열의 차이가 없는 반면, 로마규정은 제21조에서 법적용의 우선순위를 명시해두고 있고, 그 내용도 국제사법재판소규정 제38조의 규정내용보다 상세하게 규정되어 있다는 데 차이가 있다.
3. 국제형법의 해석
국제법의 해석규칙이란 국제조약에 대한 일반적 해석규칙을 의미한다. 조약상의 국제형법을 적용함에 있어서는 항상 적용할 규정에 대한 해석이 요구된다. 이 점에서 국제형법의 해석도 국내법의 해석과 다를 바가 없다. 국제조약의 해석에 있어 핵심적인 지침은 1969년 5월 23일자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31조와 제32조에 명시되어 있다. 국제관습법의 표현으로서 비엔나협약 제31조와 제32조에 명시된 해석규칙들은 로마규정의 해석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2개의 국제임시형사재판소규정을 해석함에 있어서도 적용된다.
국제법의 일반적 해석규칙은 원칙적으로 국제형법적으로 중요한 조약, 특히 로마규정의 해석에서도 그대로 원용할 수 있다. 특히 체계적 해석을 함에 있어서는 특히 범죄구성요소에 명시된 개념정의들도 함께 활용된다. 협의의 국제형법으로서 특히 로마규정의 해석에 있어 한계로 작용하는 것은 국제관습법적으로 뿌리를 두고 있는 죄형법정주의라고 할 수 있다.
Ⅲ. 로마규정상 국제범죄의 가벌성 요건
1. 로마규정상 국제범죄의 체계
모든 국제법적 범죄에 대하여 보편적으로 타당한 구조적 요소를 파악함에 있어 그 접근방식으로는 유럽대륙의 시민법체계와 영미 보통법체계가 있다. 독일이나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유럽대륙의 시민법체계는 본질적으로 구성요건해당성, 위법성, 책임이라는 세 단계의 범죄체계를 이루고 있다. 이에 반해 영미 보통법계를 따르는 국가는 모든 범죄에서 구성요건(offence)과 항변사유(defences) 라는 두 가지 요소만 이루고 있다. 로마규정이 탄생되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국제형사재판소들은 영미보통법상의 범죄체계에 적지 않게 각인되어 있었다. 그러나 로마규정상의 범죄체계는 영미보통법상의 그것도 아니고 유럽대륙의 3단계 범죄체계론도 아닌 독자적인 국제범죄개념을 취하고 있다. 로마규정상의 범죄성립요건에 관한 제규정을 요약해보면, 로마규정은 ① 범죄의 외적 측면 내지 객관적 요소, ② 범죄의 내적 측면 내지 주관적 요소, ③ 형사책임조각사유라는 3단계 범죄체계를 이루고 있다.
2. 범죄의 객관적·주관적 구성요소
가벌성의 객관적 요소는 국제범죄의 외부적 발현형상을 결정하는 모든 요건들이 포함된다. 로마규정상 범죄의 객관적 요소에는 행위, 결과 및 인과관계, 수반상황의 세 그룹으로 구성된다. 범죄의 객관적 요소와 관련하여 출발점이 되는 것은 항상 개인의 행위(Verhalten, conduct)이다. 이 행위는 대부분의 범죄에서 특정한 결과(Folge, concequences)를 침해결과나 위태화의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행위와 결과 사이에는 국제관습법에 기초하여 인과관계가 요구된다. 행위와 결과 이외에 객관적 요소의 제3의 그룹으로서 외부적 수반상황(äußere Begleitsumstände, circumstances)을 들 수 있다.
로마규정 제30조는 국제법 위반범죄의 주관적 요소에 관한 총칙규정으로서 로마규정 제6조 내지 제8조에 명시된 개별 범죄에 보편적이고 원칙적으로 적용되는 주관적 귀속원칙을 규정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로마규정 제30조 제1항에 의하면, 범죄의 객관적 요소는 원칙적으로 “고의와 인식을 가지고”(with intent and knowledge) 실행되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로마규정 제30조 제1항의 “고의와 인식을 가지고”를 해석함에 있어서는 영미 보통법상의 범죄의 주관적 요소와 대륙법계의 주관적 요소를 조화시킬 필요가 있다. 즉, 로마규정 제30조 제1항은 일반적인 고의개념을 규정해 둔 것으로 이해하고, 같은 조 제2항과 제3항은 이러한 일반적 고의개념을 법적으로 정의해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로마규정 제30조 제1항에서 “with intent and knowledge”라는 문언을 “고의와 인식을 가지고”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의사와 인식을 가지고“(willentlich und wissentlich)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의사와 인식을 합하여 고의를 구성하는 것이지 고의 이외에 또 다시 인식이 존재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로마규정이 제30조 제1항의 “고의와 인식” 보다 약화된 고의의 형식으로서 미필적 고의나 무분별(recklessness)을 포함하고 있는지의 여부는 로마규정 제30조 제2항 b호와 비교해봄으로써 알 수 있다. 로마규정 제30조 제2항 b호의 “인식”은 미필적 고의보다 더 높은 정도의 인식수준을 요구한다. 따라서 로마규정 제30조는 미필적 고의를 포함하지 않고 있다. 나아가 로마규정 제30조에는 무분별(recklessness)도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국제범죄에 대해서는 위험발생에 대한 고도의 개연성 또는 본질적인 개연성에 대한 인식이 요구됨에 반하여, 무분별(recklessness)은 행위자가 결과발생의 위험을 의식적으로 경시 내지 무시하는 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3. 형사책임조각사유
로마규정은 위법성조각사유와 책임조각사유를 구분하지 않고 그 대신 형사책임조각사유(Straffreistellungsgründe, grounds for excluding criminal responsibility)로 이해되고 있다.
1) 정당방위
로마규정 제31조 제1항 c호는 형사책임조각사유로서 정당방위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제31조 제1항 c호 제2문은 “군대가 수행하는 방어작전에 그 자가 관여되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는 이 호에 따른 형사책임 조각사유를 구성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로마규정 제31조 제1항 c호에서 규정하고 있는 정당방위상황은 원칙적으로 행위자 또는 제3자에 대하여 폭력을 사용하는 형식의 공격을 전제로 하고 있다. 다만 전쟁범죄의 경우에는 물건(재산)에 대한 공격시 당해 물건이 생활에 필수적이거나 군사적으로 필수불가결한 경우에는 정당방위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 형법상의 정당방위와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부분은 로마규정상의 정당방위가 가능한 법익의 범위가 매우 협소하다는 점이다.
2) 긴급피난
로마규정 제31조 제1항 d호는 긴급피난에 대하여 규정하면서도 정당화적 긴급피난과 면책적 긴급피난, 공격적 긴급피난과 방어적 긴급피난을 구분하지 않고 긴급피난의 사례를 모두 하나의 조항에 포함시키고 있다. 피난상황과 관련한 요건으로는 자기 또는 타인의 생명에 대한 급박한 위험 또는 계속적이거나 급박한 중대한 신체적 위해의 위험이 존재해야 하며, 이러한 위험은 타인에 의한 것이거나, 또는 행위자의 통제범위를 넘어서는 기타 상황에 의하여 형성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로마규정 제31조 제1항 d호의 해석에 의하면 자유, 재산과 같은 법익에 대해서는 긴급피난이 허용되지 않는다.
3) 상관의 명령에 따른 행위
로마규정 제33조 제1항은 상관의 명령에 따른 행위에 대하여 예외적으로 가벌성을 배제시키고 있다. 이에 의하면 행위자가 정부 또는 관련 상급자의 명령에 따라야 할 법적 의무 하에 있었고 그 명령이 불법임을 알지 못하였으며, 명령이 명백하게 불법적이지는 않았던 경우에는 하급자의 행위는 형사책임을 조각시킨다. 그러나 로마규정 제33조 제2항은 집단살해죄 또는 인도에 반한 죄를 범하도록 발한 명령은 명백하게 불법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명령에 따른 행위에 대하여 형사책임이 조각되는 범죄는 전쟁범죄 뿐이다.
4) 착 오
로마규정은 제32조에서는 착오를 사실의 착오와 법률의 착오로 구분하고 있다. 사실의 착오는 그것이 범죄성립에 요구되는 주관적 요소를 흠결시키는 경우에만 형사책임 조각사유가 된다. 법률의 착오는 원칙적으로 형사책임 조각사유가 되지 않지만 법률의 착오가 범죄성립에 요구되는 주관적 요소를 흠결시키는 경우나 제33조에 규정된 바와 같은 경우에는 형사책임 조각사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로마규정에서 명시하고 있는 사실의 착오와 법률의 착오간의 구별은 독일이나 우리나라 형법상의 구별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국제형법에서는 불법의식이라는 독자적인 범주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불법의식이 흠결된 경우에는 금지착오로 이어질 수 없다. 이 점에서 로마규정 제32조 제1항은 사실의 착오로서 기술적인 객관적 요소에 관한 착오를 규정하고 있는 반면, 로마규정 제32조 제2항은 법률의 착오로서 이른바 규범적인 객관적 요소에 관한 착오를 규정한 것으로 이해하는 견해가 독일의 통설이다.
5) 책임무능력 및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
로마규정 제31조 제1항 a호는 “사람이 자신의 행위의 불법성이나 성격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나 자신의 행위를 법의 요건에 따르도록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훼손시키는 정신적 질환 또는 결함을 겪고 있는 경우”에는 형사책임을 조각시킨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로마규정 제31조 제1항 b호는 “사람이 자신의 행위의 불법성이나 성격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나 자신의 행위를 법의 요건에 따르도록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훼손시키는 중독 상태에 있는 경우”에도 형사책임을 조각시킨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로마규정 제31조 제1항 b호 후단에서는 중독의 결과로서 행위자가 국제형사재판소 관할범죄를 구성하는 행위에 관여하게 될 것임을 인식하였거나 또는 그 위험을 무시하고 자발적으로 중독된 경우는 형사책임을 조각시키지 않는다고 규정하여 이른바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를 인정하고 있다. 로마규정 제31조 제1항 b호 후단의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 규정은 장래의 국제형사재판소의 실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6) 시 효
로마규정 제29조에 의하면, “재판소의 관할범죄에 대하여는 어떠한 시효도 적용되지 아니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시효의 경과는 형사책임조각사유로서 고려되지 않는다.
7) 불문의 형사책임조각사유
로마규정 제31조 제3항에 따라서 국제형사재판소는 로마규정에 명시되어 있지 아니한 형사책임조각사유라 할지라도 그 조각사유가 로마규정 제21조에 규정된 적용 가능한 법에 의하여 도출된 경우 재판에서 이를 고려할 수 있다.
8) 정범과 공범
로마규정은 제25조 제3항 a호 내지 c호에서 3가지 유형의 범죄가담형식을 구별하고 있다. 로마규정 제25조 제3항 a호 내지 c호에서 규정하고 있는 범죄가담형식은 독일과 우리나라 형법에서 규정되어 있는 정범과 공범체계에 유사하다. 우선 로마규정 제25조 제3항 a호는 정범에 관하여 규정하면서 그 유형을 직접정범, 간접정범 및 공동정범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에 반해 공범규정은 형식상 매우 분화되어 있다. 로마규정 제25조 제3항 b호는 범죄실행의 명령(Anordnung), 권유(Aufforderung) 또는 교사(Anstiftung)한 경우로 구분하고 있고, 로마규정 제25조 제3항 c호는 방조(Beihilfe)와 그 밖의 조력(sonstige Unterstützung)으로 구분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로마규정이 제25조 제3항 b호와 c호에서 독일형법이나 우리나라 형법에서 취하고 있는 공범종속성원칙을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공범종속성이란 공범의 가벌성이 정범의 가벌성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 즉 공범으로 처벌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정범의 가벌성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공범종속성의 요건은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활동하는 집단에 의한 범죄의 실행 또는 실행의 착수에 기타 여하한 방식으로 기여한 경우(로마규정 제25조 제3항 d호)도 필요하다. 나아가 로마규정 제25조 제3항 e호는 집단살해죄와 관련하여 집단살해죄를 범하도록 직접적이고 공공연하게 타인을 선동한 행위를 처벌하도록 명시하고 있는데, 이 경우에는 집단살해죄가 실제로 범해졌는지와 무관하게 처벌할 수 있다.
9) 상급자책임
로마규정 제28조는 a항에서 군지휘관의 책임을, b항에서 군지휘관을 제외한 모든 민간인 상급자의 책임을 명시해두고 있다. 여기서 상급자책임(superior responsbility, Vorgesetztenverantwortung)이란 군지휘관 또는 민간인 상급자가 하급자의 범죄를 방지하지 않았거나 필요한 합리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우에 부담하는 형사책임으로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륙법계 형법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국제형법의 독자적인 산물로 이해되고 있다. 즉, 로마규정 제28조의 지휘관책임의 처벌근거는 일반적인 귀속기준에 따라 지휘관 또는 상급자가 하급자의 범행에 기여한 것을 비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급자의 범행을 통제하거나 감독하지 아니한 데 대한 일종의 감독책임을 묻는 것이라는 점에서 독자성이 인정된다.
상급자책임의 실질적 근거에 관해서는 일반적으로 지휘관 등 상급자의 직무에서 도출하는 입장과 상급자의 보증인적 지위에서 도출하는 입장으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책무설, 후자는 보증인설로 특징지울 수 있다. 생각건대 책무설과 같이 군지휘관이 통솔하는 군대에 대하여 책임을 부담한다는 사실만 가지고는 하급자의 범죄를 방지하지 않은데 따른 지휘관의 형사책임을 직접적으로 근거지운다고 이해하기는 곤란하다. 지휘관이 군대를 법규에 따라 지휘할 의무는 군사적 관련영역에서는 인정될 지는 몰라도 일반국민이나 국제공동체에 대해서는 그러한 의무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급자의 범죄행위에 대한 지휘관의 형사책임은 위험원으로서 무장된 군대를 효과적으로 통제해야 하는 지휘관의 보증인적 지위에서 도출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 다만, 상급자책임과 관련하여 군지휘관과 민간인 상급자의 보증인 의무는 달리 취급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제형법상 상급자책임의 체계적 지위에 관한 독일의 학설을 보면, 상급자책임이 부작위범과 공범론의 중간영역에 위치한다고 이해하는 견해가 있고, 상급자가 자신의 과실과 타인의 범죄에 대하여 책임을 부담한다는 점에서 부작위범의 요소와 공범의 요소를 모두 갖춘 이중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이해하는 견해도 있다. 그렇지만 이 두 견해는 모두 상급자책임이 범죄체계론상 독자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생각건대 국제형법상 상급자책임은 공범론과 부작위범의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로마규정 제28조에 따라 상급자에게 국제형법상의 책임을 귀속시키기 위한 객관적인 요건으로는 ① 로마규정 제28조에 따라서 개인에게 상급자책임을 귀속시키기 위해서는 상급자와 하급자간의 관계가 존재할 것, ② 상급자가 필요하고 합리적인 조치를 부작위할 것, ③ 하급자의 범죄실행이 통제의무위반의 ‘결과’이어야 할 것, ④ 인과관계가 존재할 것 등이다. 로마규정 제28조가 성립하기 위한 주관적 요건에는 크게 3가지 기준이 존재한다. 이들 3가지 기준은 군지휘관과 민간인상급자에게 모두 적용되기도 하고 군지휘관이나 민간인상급자 중 어느 한쪽에만 적용될 수도 있다. 우선, 군지휘관과 민간인상급자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기준인데, 이들 상급자가 하급자의 범죄에 대하여 “알고 있었던 경우에는” 상급자책임이 인정된다. 다음으로 군지휘관에 대해서만 요구되는 특수한 요건인데, 군지휘관이 하급자의 범죄에 대하여 “알았어야만 했던 경우”(should have known)에도 상급자책임이 인정된다. 여기서 “알았어야만 했던 경우”란 군지휘관이 통상의 주의의무를 기울였다면 하급자의 범죄실행을 알 수 있었던 경우로서 결국 군지휘관의 과실책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민간인 상급자에 대하여 요구되는 특수한 요건인데, 이는 로마규정 제28조 b항 1목에서 그 주관적 요건을 명시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하급자의 범죄실행을 “명백히 보여주는 정보를 의식적으로 무시하였을 것”(consciously diregarded information which clearly indicated)을 요구하고 있다.
10) 미 수
로마규정 제25조 제3항 f호는 국제형법의 역사상 최초로 미수범과 중지미수에 관하여 명시하고 있다. 국제범죄의 미수범에 대한 가벌성은 이미 국제관습법상 인정되어 왔다. (장애)미수의 객관적 요건에 관하여 로마규정 제25조 제3항 f호 전단은 행위자가 “국제범죄의 실행을 개시하기 위한 본질적인 단계를 의미하는 행위의 수행”(Vornahme einer Handlung, die einen wesentlichen Schritt zum Beginn der Ausührunf des Völkerrechtsverbrechens)가 가벌성 인정시점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한편, 로마규정 제25조 제3항 f호 후단은 중지미수를 인정하고 있다. 특히 로마규정은 중지미수에 대하여 행위자의 자발적인 행위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 경우 자발성의 판단기준에 대해서는 아무런 상세한 규정이 없다. 로마규정 제25조 제3항 f호 후단은 중지미수가 인정되기 위한 2가지 유형을 규정하고 있다. 하나는 범죄의 계속적 실행의 포기이고, 다른 하나는 달리 범죄의 완성의 방지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형법상 중지미수의 유형인 착수미수의 중지미수와 실행미수의 중지미수에 상응하는 것이다.
Ⅳ. 전 망
로마규정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적지 않은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핵심적 역할에 걸맞지 않게 국내 형사법계에서는 국제형법에 관한 심층적인 연구가 행해지지 않고 있다. 국제형법을 주제로 한 학회차원의 학술대회도 개최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전문서적도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지금까지 국제형법은 국제형사재판소제도를 중심으로 주로 국제법 학계에서 논의되어 왔을 뿐이다. 그러나 로마규정은 국제법상 개인에 대한 직접적인 가벌성을 근거지우고 있고, 특히 가벌성을 검토함에 있어서는 국제형법에 기초한 귀속규칙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국제형법에 대한 형사법학계의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특히 선진외국에서는 로마규정이 탄생되기 이전에도 국제형법에 관한 심층적인 논의가 진행되어 왔고, 로마규정이 탄생된 이후에는 국제범죄의 귀속에 관한 학술연구가 연구소나 대학을 중심으로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사람과 물자의 자유로운 이동이 행해지고,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하여 국가간 국경이 해체되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능동적인 역할이 한층 더 요구된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제 국제형법에 관한 연구는 선진국만의 고유한 연구대상이 아니라 우리나라 형법학계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영역이라 할 것이다. 국제형법은 마치 국내형법상의 귀속기준에 더하여 독자적인 귀속기준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연구의 넓이와 깊이는 매우 광범위하며 난해한 측면이 있다. 향후 국제형법의 개별적인 쟁점에 관한 보다 심도있는 연구가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